기증유물 도록/안내와 pdf

안동김씨 문정공파 기증유물 도록을 본 블로그에 실림에 즈음하여

추읍산 2009. 11. 12. 16:35

제가 기증한 유물이 안동김씨 문정공파 기증유물이라는 이름으로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총서 제1집으로 발행되었습니다. 이에 본 도록이 나오기까지 최일선에서 지휘하신 김선교 양평군수님과 군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실무를 담당하시는 이강웅 학예사님, 또한 본 책이 나오기까지 불철주야 연구에 몰두하신 가회고문서 연구소 여러분에게도 깊은 고마움을 전 합니다.


차례는 1) 도판에서 편지, 서적, 문서, 유묵, 유물, 교지.

          2) 석문 및 번역에서 황산유고 번역 및 영인입니다.


위 도록을 저의 블로그에 실으려고 합니다. 본 도록은 연구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고  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제가 기증한 유물이 더 연구되어 조선 후기 시대를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이를 저의 블로그에 소개함에는 처음부터 순서에 의해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이런 부분부터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는 곳부터 시작하여 점차 전체로 학대하고자 합니다. 이때에는 원문을 가감 없이 그대로 싣습니다. 다만, 다음은 추가합니다. 한자(漢字)로 된 원문(原文)에는 한글로 된 토가 없습니다. 이를 한글로 토를 달겠습니다. 이는 원문을 옮기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추기: 2011, 3, 15부터는 한자에 토를 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필요하면 [필자(추읍산)가 쓰는 글(옮긴이의 글)]이라는 제목하에 글을 쓰겠습니다. 이는 추리(推理)하여 쓰는 글입니다. 사실로 다가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것이지 사실과 꼭 맞는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때는 최대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정 합니다. 


1) 교지, 편지를 제외한 많은 시(詩) 등 유묵, 유물들이 그 시초가 된 년, 월, 일이 명기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때의 시대 모습이 그랬는가  봅니다. 그리하여 그때를 추정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글의 내용과  정황을 살펴서 어느 때 인가를 추리하고자 합니다.


2) 그때 모습을 그려보고 이해를 돕기 위하여 쓰는 글입니다. 그때 정황(情況) 속으로 나 자신이 빠져들어 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만 진실(眞實)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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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유고(黃山遺稿)부터 시작합니다.

황산유고는 황산 김유근(黃山 金逌根 1785~ 1840) 의 유고입니다. 필자가 2007년 10월 26일 개관한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의 <역사관>에 기증한 조상유물 중에는 황산 김유근의 황산유고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황산유고는 저의 조카 되는 백촌거사가 그분 블로그인 백촌거사와 함께하는 한시여행에서(http://blog.daum.net/baikchon001/12644025)여러 편의 시를 소개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일부분이었습니다. 이에 황산유고가 그 해석문이 완역되어 나왔기에 저는 황산유고를 본 블로그에 소개합니다.


황산 김유근은 필자의 5대조로서 영안 부원군 김조순의 장자로 1785년(정조 9)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나 종가의 대를 잇기 위하여 종 백부인 김용순(金龍淳, 1754~1823 필자의 6대조)에게 입후하였습니다. 황산은 1832년(순조 32) 이후 한때 군국의 사무를 짊어지시기도 했으나 정치보다는 학문과 예술을 더 사랑하신 분입니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 이재 권돈인(彛齋 權敦仁 1783~ 1859), 그리고 선배이신 자하 신위(紫霞 申緯 1769~ 1845) 등과 학문을 연구하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하였는데 이분들은 19세기 문화계에서 한 축을 이루었던 분 들이라고 합니다.


위 분들은 문우(文友)로서 아름다운 우정을 쌓으시던 분 들인데 추사 김정희와 자하 신위의 문집이 전해 오는데 반해 황산 김유근과 이재 권돈인의 문집은 아직 이 세상에 알려진 바 없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기증한 유물 중에 황산 유고 곤(坤, 권 3은 詩, 4는 文) 1책이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유고로 만들기 위한 초고(草稿)로 보이는 표지 없는 5책이 더 보이는데 이 책들이 실전된 황산 유고 권 1, 권 2일 수 있습니다. 유고가 온전히 전해오지 못함 속에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재 권돈인의 문집도 하루속히 발굴되기를 바랍니다. 처음부터 순서에 의해서 올리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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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는 김유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유근(金逌根, 1785년~1840년)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시인, 화가, 문신으로 예조판서, 병조판서, 판돈령부사를 지냈다. 글씨·그림·시 등 다방면에 뛰어났으며, 특히 바위를 잘 그렸다. 안동 김씨 세도 정권의 기틀을 다진 영돈령부사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증 의정부영의정 김조순(金祖淳)의 장남이다. 본관은 (신)안동(安東)이며 (字)는 경선(景先), (號)는 황산(黃山),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목차

 [숨기기

[편집] 생애

1810년, 식년시에 급제하였으며 사서·검상 등을 지냈다. 그뒤 당상관으로 승진하여 1817년 이조 참의, 1819년에는 대사성을 거쳐 홍문관 부제학이 되었다. 이후 이조 참판 · 대사헌이 되었으며, 역임하였다. 1822년에 이조참판[1], 1825년 사헌부대사헌 등으로 등용되었다. 1826년에는 한성부 판윤을 지내고 1827년에는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였으나 부임 도중, 한 전직 관원의 면회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면회를 거절당한 것에 앙심을 품은 전직관원에 의해 부임 도중 피습, 일행 5명이 흉변을 당하여 공은 부임을 취소하고 되돌아왔다.

그 뒤에도 병조판서와 돈령부판사(종일품)를 역임하였고 1830년에는 다시 한성부 판윤으로 등용되었으며 아버지 김조순이 사망한 뒤 실권자가 되었다. 1834년 순조(純祖)가 승하하자 《순조대왕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후 순조가 붕어하고 어린 헌종(憲宗)이 즉위하자 헌종(憲宗)과 자신의 누이동생인 순원왕후(純元王后)를 성심껏 보필하여 헌종(憲宗) 초기의 안동 김씨 세도 정권을 이끌으나 중풍에 걸렸고, 1835년에 지병으로 인해 실어증에 걸려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천주교에 호의적이었으며 사망하기 1년 전인 1839년에는 유진길(劉進吉)의 권유로 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이때 천주교의 박해를 빌미로 기해박해가 일어나 보수적인 벽파 계열의 풍양 조씨가 집권하고 시파 계열의 안동 김씨는 세도 가문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1840년에 사망하였으며 사후 문정(文貞)의 시호가 추증되었다.

아버지인 김조순과 같이 글씨와 그림, 시조에 모두 능하였으며 갈필(渴筆)을 사용하여 지극히 간일(簡逸)하고 문기(文氣)가 넘치는 남종문인화(南宗文人怜)를 잘 그렸다. 현재 남아있는 문화재는 생전에 남긴 문장을 집대성한 《황산집(黃山集)》과 회화인 《괴석도(怪石圖)》와 《연산도(硏山圖)》, 《청성묘중수비문(淸聖廟重修碑文)》 등이 있다. 서울 삼청동(三淸洞)에 백련사(白蓮社)라는 집을 짓고 거주하였다 하나.

[편집] 적벽시 차운

적벽 농암의 적벽시에 차운을 달다.[2]

赤壁 次 農巖韻 - 황산 김유근(金逌根) -

 

翠碧丹崖出半天 (취벽단애출반천) / 푸른 절벽 붉은 비탈 중천에 솟아있고

澄江環合作平川 (징강환합작평천) / 맑은 강물 에워싸고 평평히 흐르네

何年雲影棲黃鶴 (하년운영서황학) / 어느 해부터 구름 속엔 학 한 마리 살고

遙夜簫聲降紫烟 (요야소성강자연) / 긴밤 옥피리 소리에 붉은 연기 내리네

疊石還如圖上見 (첩석환여도상견) / 돌무더기 쌓은 곳은 그림을 보는 것만 같고

層巒却似鏡中懸 (층만각사경중현) / 겹겹의 산봉우리는 마치 거울 속에 비치는 것 같구나

月明更向峯頭去 (월명갱향봉두거 ) / 달이 밝아 다시 산꼭대기로 오르니

羽化多應不讓仙 (우화다응불양선) /신선이 되어 응당 신선보다 뒤지지 않는구나


[편집] 아우 김원근을 추모하며

窮天方抱慟 (궁천방포통) / 하늘 끝까지 바야흐로 슬픔 안았고

割半又胡然 (할반우호연) / 몸 절반 베어낸 슬픔 또 어찌하랴

不幸門閭否 (불행문려비) / 불행히도 집안 운세 막혀 버리니

無徵骨相全 (무징골상전) / 니 골상을 징험할 길 온전히 없어라.

深悲如一日 (심비여일일) / 깊은 슬픔 마치 하루 같으며

大訣已三年 (대결이삼년) / 커다란 이별 이미 삼년이어라

夢寐猶難見 (몽매유난견) / 꿈결에도 오히려 못 만나지만

幽明豈棄捐 (유명기기연) / 유명은 달리해도 어찌 내버려 두랴.

[편집] 저서

[편집] 가족 관계

[편집] 주석

  1. 참판은 육조의 판서의 아래, 참의의 위로 차관급 직위이다.
  2. 적벽시는 황산의 종5대조인 농암선생農巖 김창협의 시 적벽 에 운을 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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