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그리움은 강물처럼 109

옛 터전 우물가에서

22칸 ㄷ자 조선 기와집 나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뜯겨 옮겨온 집 줄이고 줄였다는데 엉성하게 맞추어 비는 새고 기울었습니다 쥐들은 어찌 그리 많은지요 옹달샘은 솟아오르고 작고 작은 두레박질에 사랑을 퍼 날랐았습니다 층층시하 어머님의 노고 쩍쩍 달라붙는 엄동설한 삼복더위 한 여름에도 쉴틈이 없었습니다 벌 나비 떼 모여드는 우물가 징검다리 놓았습니다 새콤달콤 석류 가득한데 앵두 대추 주렁주렁입니다 나 어린 시절이 맞는가? 잡초에 묻혀 있는 옛터에는 오동나무 그리움이 쌓였습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돛단배를 은하수에 띄움은 그때 그 안에 나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의 여름

추읍산 아래 남촌 나 어렸을 적이 그립습니다 칙폭칙폭 ~~ 뿡 ~ 산 넘어에서 들려오고 동그라미 두 날개에 달고 산을 넘고 내를 건넜습니다 풍덩 뛰어들던 물가 무지갯빛 물보라가 피는데 물고기가 따로이지 않았습니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웃기 따라 망태기 가득한데 틈새 꾸구리 덥석입니다 무리 짓는 피라지들 용용이지만 어항 안 은빛 가득합니다 보글보글 매운탕 끓는 소리 소주잔 기울이며 크 ~ 다지고 커갑니다 추읍산 아래 香谷(향리)은 삼복(三伏)이 즐겁습니다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구나 일구어온 터전 상전벽해 되었습니다 티는 버리고 옥은 가꾸어 자자손손 언제까지이길요 얘들아 놀자 ~ 얘들아 놀자 ~ 기억이라는 창고 열고 나, 그리움 찾아 마주합니다

비 오는 아침 녘

주룩주룩 빗소리 예보되어 있었지 나 어린 시절 비바람에 꺾이는 비닐우산과 파고드는 우비가 있었다네 행여 휩쓸리지 않을까? 조심조심 개울을 건넜지 십 리 등교(登校) 길 되돌아올 때도 있었어요 날씨도 종시속(從時俗)인가? 마른장마일 적 많았는데 때론 물 폭탄에 논밭이 잠긴 적도 있었지 장마철 끝났다는 八月에도 태풍에 곳곳 휩쓸렸고 유비무환 교훈으로 받았습니다 7월도 끝을 향해 달린다 비가 내리고 있다 제법 양이 많을 듯 순간을 밝히는 빛 우르릉 ~ 꽝 ~ 우르르 ~ 꽝 不義를 불태우소서 노아의 방주에는 사랑만이 흐릅니다 정의의 씨앗을 뿌리소서 가꾸고 열매 맺어 주 하느님 지으신 세상 아름답고 동그랗게 그리자

빛나는 필봉 1세기

민족의 봉화 언론의 기수 빛나는 필봉 반세기 50년전 3월 5일 조선일보 마음 설레며 바라보았지 같은 세월 더하니 빛나는 필봉 1세기가 아니던가 어린시절 보리고개 넘을적에 한 장? 그때는 그랬다 3, 15 부정선거 앞장서 횃불을 들었고 아둔한 백성들을 일깨웠습니다 자유와 민주 선봉에 섰고 어둠을 밝혀주는 횃불은 가시밭길 속에서도 정의의 방패막이 이었단다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구나 지금의 사태는 어떠한가? 영장이란 괜한 이름 아닌데 서서히 익어가는 개구리는 뛰쳐나올줄 모릅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한강에서 높이 솟은 백두산을 바라보아야 함은 이어가야 할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긴 밤 짧은 낮

긴 밤 짧은 낮 동지가 다가오고 있다 문풍지가 갈라놓은 밖과 안 초저녁 찬바람이 스며들었고 화롯가에 어머님의 옛이야기가 시작됐지 아득한 옛날이야기 쟁쟁한데 나 어릴 때는 어디로 갔는가? 근원은 변함없는데 상전이 벽해되었어요 추읍산은 그 모습 그대로나 나무꾼 오르내리던 길 숲에 싸여 김삿갓 북한 방랑기는 들을 수 없네 뛰어놀던 산과 들 달라진 세상이라지만 따로이지 않았고 달 밝은 초저녁의 여름, 어머님이 그립습니다

푸르고 푸른 나무

그리운 고향, 추읍산 아래 南村(향리)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빠른 세월 문턱을 넘으면 4월이라 살같이 빠른 지난 시절 산천은 꼭 같건마는 다 어디로 갔는가? 왜? 그래야만 했을까? 사랑은 실종됐고 소통은 막혔다 극지보다 더 찬 골짜기 이 또한, 나 못난 탓이렸다 모두가 흔적의 한 페이지 새로운 장을 열어야지 고독은 우울증을 불러온다나 매화 산수유는 만발했고 꽃 피고 새우는 봄이 눈앞인데 꽃샘추위 옷깃을 여밉니다 적막에 싸인 오후 추읍산 아래 남촌에선 푸른 물결 일렁이겠지 뛰어놀던 산과 들 종달새 우짖는 산골에는 푸르고 푸른 나무 있었어 그 그늘 아래 뛰어놀았지 학교 갔다 오면 얘들아 놀자 밤낮이 따로이지 않았고 둥근달이 떠오르면 뒷동산 올라가 무등을 타고 장대로 달을 떠서 망태에 담았지 그리움이 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