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77

옛 터전 우물가에서

22칸 ㄷ자 조선 기와집 나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뜯겨 옮겨온 집 줄이고 줄였다는데 엉성하게 맞추어 비는 새고 기울었습니다 쥐들은 어찌 그리 많은지요 옹달샘은 솟아오르고 작고 작은 두레박질에 사랑을 퍼 날랐았습니다 층층시하 어머님의 노고 쩍쩍 달라붙는 엄동설한 삼복더위 한 여름에도 쉴틈이 없었습니다 벌 나비 떼 모여드는 우물가 징검다리 놓았습니다 새콤달콤 석류 가득한데 앵두 대추 주렁주렁입니다 나 어린 시절이 맞는가? 잡초에 묻혀 있는 옛터에는 오동나무 그리움이 쌓였습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돛단배를 은하수에 띄움은 그때 그 안에 나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의 여름

추읍산 아래 남촌 나 어렸을 적이 그립습니다 칙폭칙폭 ~~ 뿡 ~ 산 넘어에서 들려오고 동그라미 두 날개에 달고 산을 넘고 내를 건넜습니다 풍덩 뛰어들던 물가 무지갯빛 물보라가 피는데 물고기가 따로이지 않았습니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웃기 따라 망태기 가득한데 틈새 꾸구리 덥석입니다 무리 짓는 피라지들 용용이지만 어항 안 은빛 가득합니다 보글보글 매운탕 끓는 소리 소주잔 기울이며 크 ~ 다지고 커갑니다 추읍산 아래 香谷(향리)은 삼복(三伏)이 즐겁습니다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구나 일구어온 터전 상전벽해 되었습니다 티는 버리고 옥은 가꾸어 자자손손 언제까지이길요 얘들아 놀자 ~ 얘들아 놀자 ~ 기억이라는 창고 열고 나, 그리움 찾아 마주합니다

푸르고 푸른 나무

그리운 고향, 추읍산 아래 南村(향리)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빠른 세월 문턱을 넘으면 4월이라 살같이 빠른 지난 시절 산천은 꼭 같건마는 다 어디로 갔는가? 왜? 그래야만 했을까? 사랑은 실종됐고 소통은 막혔다 극지보다 더 찬 골짜기 이 또한, 나 못난 탓이렸다 모두가 흔적의 한 페이지 새로운 장을 열어야지 고독은 우울증을 불러온다나 매화 산수유는 만발했고 꽃 피고 새우는 봄이 눈앞인데 꽃샘추위 옷깃을 여밉니다 적막에 싸인 오후 추읍산 아래 남촌에선 푸른 물결 일렁이겠지 뛰어놀던 산과 들 종달새 우짖는 산골에는 푸르고 푸른 나무 있었어 그 그늘 아래 뛰어놀았지 학교 갔다 오면 얘들아 놀자 밤낮이 따로이지 않았고 둥근달이 떠오르면 뒷동산 올라가 무등을 타고 장대로 달을 떠서 망태에 담았지 그리움이 강물..

친구야 우리 우정의 잔을 높이 들자

아득히 세찬 여울에서 들려오는 소리 어린 시절을 열어봅니다 얘들아 놀자 ~ 귓가에 쟁쟁한데 다 어디로 갔는가? 되돌릴 수 없지만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공차기, 구슬치기, 말타기, 깡통 ~ 낮에서 밤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었지 둥근달이 떠오르면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香谷의 밤은 깊어가고 등잔불 아래서 옛날이야기 듣기 좋아했어 열려라 참깨 소금장수 이야기 - 호랑이 담배 피운다고요? 지금 세대, 모르지 몰라 겪어보지 않았으니까요 라디오도 귀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해도 서로 돕고 일깨우는 사랑의 울타리 안이었습니다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구나 하나, 둘씩 먼저 간 벗들아 저 높은 곳에서 누구하고 놀고 있니? 불알친구 학창 또래들 석 달에 한 번씩 만난 다오 뛰어놀던 산과 들 끝없어 추읍산 아래 남촌에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빛 쏟아지는 이 시간 푸르고 푸르러 끝없는데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나 친구 되어 하늘을 날고 싶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뛰어놀던 소년은 주름살은 파이고 오늘에 나 있음이 시대를 잘 타고났음이런가? 이룬 것은 작고 잃은 것은 크니 모두가 여리고 못난 내 탓이다. 지난 일은 기억이라는 창고 속에 남아있어 모두일 수는 없지만 생각나 이것만은 남겨야겠다 하는 것은 오늘에 되살린다. 더 녹슬고 무디어지기 전에 말이다. 침해도 예방할 수 있고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1950년대 6, 25 전쟁 때는 제2 선영인 흥천면 효지리에서 피난시절을 보냈음은 지난 글에서 밝힌 바 있다. 흥천 초등학교 시절 사이렌 소리 울리면 공부시간에도 뛰는 소개훈련이라고 있었다. 1953년 봄, 3학년 본향인 개군면 향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