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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정(花水亭)에 대한 기문(記文)

추읍산 2011. 3. 20. 16:32

 

花水亭記

화수정(花水亭)에 대한 기문(記文)

 

무자년(1828, 순조28, 작자 44세)

 

 

김유근(金逌根 1785~1840)

 

丙子春 余嘗夢至一所 平野廣漠 羣峰環合 流水潺湲 林花亂飛 四顧靜寂 不聞人聲 忽得一句云 果然流水成何事 秪是飛花不近人 蓋寫所見也 旣覺 了然在目 昨日偶到池邊 見殘英繽紛 飛集衣裾 復憶舊句 足成一律 他日遍求郭外 得與夢境相愜者 構一小亭 取二聯語 扁曰花水云 此余詩序也 旣而 又繪爲圖 名曰花水夢境 蓋思之深而求之切也 丙子 去今十有二年之間 無日不思 無歲不求 愈求而愈不能得也 是歲夏 僑居東郊 三月無家 遂以暇日行 尋可居之地 至所謂樅村田舍者 卽吾家老稼先生舊宅也 雖其庭宇蕪廢 草樹荒凉 而岡巒之勢 林野之景 宛然是向日夢中所覩也 方池荷盛開 異馥襲人 田水汨㶁 循除而去 余茫然而失 犂然而失 噫 昔以十年之久求之而不得者 今乃一朝得之 曾不費力 昔又不計其遠而不能者 今乃無意於近而能之 抑彼地與人 相遇有時而然歟 抑吾前日塵業太重 則靈區難見 今日名心漸盡 則眞境自露而然歟 君子於患難困苦之中 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天之所以玉成於吾者至矣 不然 以有涯之身 循無涯之欲 死而不知其非 寧不大可哀哉 於是 披剔荒穢 因其舊基 臨池構亭 命名花水 或以爲 異哉子之名亭也 物之至脆 莫如花 物之善逝 莫如水 至脆者易謝 善逝者易空 彼二者 皆無情物也 子奚取焉 余曰 唯 子以花爲易謝 以水爲易空 是則然矣 獨不思夫花今年落 而明年復開 水終日而流者 又繼之以夜乎 由至脆而言 天地之間 本無不毁之物 由善逝而言 天地萬物 何嘗一息停哉 彼所謂云云者而不如謂之則然矣 子何必深究於彼哉 且夫天下之有情 無過於誠 彼二物者 禀自然之理 具善繼之性 善繼者 誠之道也 謂誠之無情 又烏可也 或笑而退 遂爲之記


 병자년(1816) 봄 어느 날, 꿈에 내가 어떤 곳에 갔다. 그곳은 아득히 넓은 평야를 산봉우리들이 사방에서 에워싸고, 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숲속의 꽃들이 어지럽게 날리는 곳이었다. 주위 사방이 쥐죽은 듯 고요하여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끝없이 흘러가는 물은 무엇 때문인가, 날리는 꽃이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네. [果然流水成何事 秪是飛花不近人]” 이것은 그곳에서 본 것을 표현한 것이다. 잠에서 깬 뒤에도 생시인 듯 눈앞에 선했다. 어제 걷다가 우연히 연못 주변에 이르렀는데, 아직 떨어지지 않고 남은 꽃이 어지럽게 날리면서 옷에 떨어졌다. 꿈속에서 지었던 구절을 기억하고서 율시 한 수를 완성했다. 후일 꿈속에서 본 곳과 같은 장소가 있는지 성곽 밖으로 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찾아서 그곳에 작은 정자를 짓고 두 구절에서 한 글자씩 뽑아 ‘화수정(花水亭)’이라고 이름 붙이려 했다. 여기까지가 바로 내 시에 대한 설명이다. 얼마 뒤에 또 이곳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화수몽경(花水夢境)’이라고 이름 붙였으니, 생각이 끝내 떠나지 않고 찾으려는 마음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다.

 병자년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데, 하루라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고 한 해라도 찾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찾을 수 없었다. 올 여름 동교(東郊)1)에서 곁방살이를 하느라 3개월 동안 집이 없었다. 마침내 한가한 날 길을 나서서 거처할 만한 곳을 찾아다니다가 이른바 종촌(樅村) 농가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이곳은 바로 우리 집안 어른이신 노가재(老稼齋)2) 선생의 옛 집이다. 집이 전체적으로 퇴락하고 수목들이 황량했지만, 산의 형세와 들판의 경치는 완연히 옛날 꿈에서 본 것과 같았다. 때는 한창 연못의 연꽃이 활짝 피는 시절이라 특이한 향기가 사람을 감싸고 시냇물은 콸콸 흐르고 있었다. 섬돌을 따라 걸어가 보고는 나는 망연자실,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예전에는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찾아도 찾지 못했던 곳을 지금은 전혀 힘을 쓰지 않고도 하루아침에 찾고, 예전에는 먼 지역도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가 얻지 못했던 곳을 지금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가까운 곳에서 얻었다. 아마 장소와 사람이 서로 만나는 것에도 정해진 운명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그렇지 않다면 이전에는 내가 세속의 사업에 짓눌려 있는 상황이라 아름다운 곳을 봐도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지금은 공명(功名)을 세우려는 마음이 점차 사라져 신선이 살 만한 좋은 장소가 저절로 드러나서 찾게 되었을 것이다. 군자는 근심걱정과 고통 속에서 착한 마음을 내고 나쁜 성질을 참아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니,3) 하늘이 나를 완벽하게 만들어 주려는 뜻이 훌륭하다. 그렇지 않다면 유한한 몸으로 무한의 욕망을 따르다가 죽어도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모를 테니, 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에 잡초를 제거하고 옛 터에 기반하여 연못에 가까이 정자를 짓고는 ‘화수정’이라 이름 붙였다.

 어떤 이가, “정자의 이름을 화수정이라 한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사물 가운데, 가장 약한 것이 꽃이고 가장 잘 가버리는 것이 물이다. 너무 약한 것은 쉽게 시들고 잘 가버리는 것은 쉽게 비어버린다. 저 꽃과 물 두 가지는 정(情)이 없는 야박한 물건이니, 그대는 어째서 그것으로 이름을 삼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그렇다. ‘꽃은 쉽게 시들고 물은 쉽게 비어버린다.’는 그대의 말은 사실이다. 그런데 꽃은 올해 시들어 떨어지면 내년에 다시 피고, 물은 낮 동안 흘러가지만 밤에 계속 흘러온다는 것을 생각지는 못했는가. 가장 약하다는 관점으로 말하면 천지 사이에 어떤 물건이든지 부서지게 마련이고, 잘 가버린다는 관점으로 말하면 천지의 만물이 어찌 한 순간이라도 정지한 적이 있겠는가. 그대는 무엇 때문에 굳이 저것들에 대해 세세하게 따지는가. 또한 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진실[誠]’이 있는지의 여부가 관건인데, 저 꽃과 물은 자연의 이치를 부여 받았기 때문에 자연의 이치를 잘 계승하는 성품을 갖추고 있다.4) 잘 계승하는 것이 바로 ‘진실’의 도리이니, ‘진실’에 정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라고 하니, 그가 웃으며 물러갔다. 마침내 이에 대해 기문을 지었다.


 

 

1) 동교(東郊) :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의 집이 있던 곳으로, 현 성북구 장위동이다. 작자가 무자년(1828, 순조28, 44세)에 이 집을 개수하여 거처했다.


2) 노가재(老稼齋) : 김창업(1658-1721)의 호이다. 김창업(효종9-경종1)은 본관 안동, 자 대유(大有), 호 가재(稼齋)․노가재(老稼齋)이다. 김수항(金壽恒)의 넷째아들로, 어려서부터 창협(昌協)·창흡(昌翕) 등 형들과 함께 학문을 익혔다. 1681년(숙종7)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한양의 동교송계(東郊松溪; 현 성북구 장위동)에 은거하였다. 1689년(숙종15)에 기사환국(己巳換局)이 발생하자 포천 영평산(永平山)에 숨어 살다가 1694년(숙종20) 갑술환국(甲戌換局) 때 다시 송계로 나왔다.


3) 착한 마음을…향상시키니 :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힘들게 하고 뼈마디를 아프게 하며, 살가죽을 까칠하게 하고 몸뚱이를 곤궁하게 하여 그 사람이 행하는 일마다 어긋나게 한다. 이렇게 해서 착한 마음을 내게 하고 나쁜 성질을 참게 하여 원래 잘하지 못했던 것을 더욱 잘 하게 해 주려 한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맹자 』 「고자(告子)」하 15장>


4) 저 꽃과…갖추고 있다 : 여기에서 말하는 자연의 이치는 생생불식(生生不息; 낳고 낳아 쉼이 없음)이다. 우주계와 인간계 모두 무엇이든 가면 오고, 끊어지면 이어지는 것인데, 꽃은 떨어지면 내년에 피고, 물은 낮에 가면 밤에 잇기 때문에 자연의 이치를 잘 계승했다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