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贊成公(達行) 가문

풍고 김조순 행력(行歷)

추읍산 2021. 10. 1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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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 한국고전DB에서 발췌

 왕  력 서기 간지 연호 년령 기                                            사
영조 41 1765 을유 乾隆 30 1 8월 23일, 태어나다.
영조 49 1773 계사 乾隆 38 9 7월, 모친 申氏의 喪을 당하다.
정조 5 1781 신축 乾隆 46 17 靑松沈氏 沈健之의 딸과 혼인하다.
정조 7 1783 계묘 乾隆 48 19 7월, 金照와 仁壽峯 아래 淸潭을 유람하다.
정조 9 1785 을사 乾隆 50 21 9월, 장남 金逌根이 태어나다. ○ 10월, 文科에 합격하다. 正祖가 ‘文正肖孫’이라 칭찬하고 初名인 ‘洛淳’을 ‘祖淳’으로 改名해 주다.
정조 10 1786 병오 乾隆 51 22 12월, 藝文館 檢閱이 되다. 차남 金元根이 태어나다.
정조 11 1787 정미 乾隆 52 23 宿直할 때에 李相璜과 함께 唐宋의 稗官小說을 읽은 것이 발각되어 정조로부터 견책을 받다.
정조 12 1788 무신 乾隆 53 24 12월, 奎章閣 待敎가 되다.
정조 13 1789 기유 乾隆 54 25 3월, 檢閱로 있으면서 王命을 어겨 仕版에서 삭제되다. ○ 5월, 훗날 純元王后가 될 장녀가 태어나다.
정조 14 1790 경술 乾隆 55 26 5월, 繼母 李氏의 喪을 당하다.
정조 16 1792 임자 乾隆 57 28 藫庭 金鑢와 함께 淸나라의 小說集인 「虞初新志」를 모방하여 「虞初續志」를 만들다. ○ 10월, 冬至兼謝恩使의 書狀官으로 燕京에 가다. ○ 11월, 稗官小說의 耽讀으로 인하여 文體가 바르지 못하다는 정조의 견책을 받고 使行 途中에 自訟文을 지어 올리다.
정조 17 1793 계축 乾隆 58 29 5월, 奎章閣 直閣이 되다. ○ 9월, 父親喪을 당하다.
정조 21 1797 정사 嘉慶 2 33 6월, 이조 참의가 되다. ○ 12월, 삼남 金左根이 태어나다.
정조 22 1798 무오 嘉慶 3 34 가을, 정조의 御製集을 繕寫하는 일에 참여하다.
정조 23 1799 기미 嘉慶 4 35 9월, 정조가 迎春軒에서 召對하고 元子의 輔導를 부탁하다.
정조 24 1800 경신 嘉慶 5 36 1월, 兼輔德이 되다. 왕세자의 관례 때에 贊이 되다. ○ 2월, 딸이 世子嬪에 간택되다. ○ 6월, 정조가 昇遐하고 承旨가 되다. ○ 7월, 摠戎使, 홍문관 부제학이 되다. ○ 8월, 병조 판서가 되다. ○ 9월, 정조의 諡冊文을 지어 올리다. ○ 11월, 예문관 제학이 되다. ○ 12월, 규장각 제학이 되다.
순조 1 1801 신유 嘉慶 6 37 1월, 형조 판서가 되다. ○ 2월, 총융사가 되다. ○ 5월, 예조 판서가 되다. ○ 6월, 이조 판서가 되다.
순조 2 1802 임술 嘉慶 7 38 5월, 文衡이 되다. ○ 8월, 判義禁府事가 되다. ○ 9월, 御營大將이 되다. 純元王后의 大禮 후에 永安府院君에 봉해지다. ○ 10월, 訓鍊大將, 扈衛大將이 되다.
순조 3 1803 계해 嘉慶 8 39 윤2월, 훈련대장으로서 馬政에 대해 건의하다. ○ 3월, 宣惠廳 提調로서 復戶와 給復의 弊端을 혁파할 것을 아뢰다.
순조 4 1804 갑자 嘉慶 9 40 2월, 檢校提學이 되다.
순조 8 1808 무진 嘉慶 13 44 4월, 훈련대장으로서 軍需와 武藝의 額數를 늘릴 것을 아뢰다.
순조 11 1811 신미 嘉慶 16 47 7월, 禁衛大將이 되다.
순조 23 1823 계미 道光 3 59 9월, 庶孼을 許通해 줄 것을 獻議하다.
순조 24 1824 갑신 道光 4 60 9월, 關西로 沐浴하러 갔다와서 純祖를 알현하고 還穀과 大同庫의 폐해, 西道의 인재 등용 등을 아뢰다.
순조 26 1826 병술 道光 6 62 4월, 文衡이 되다.
순조 28 1828 무자 道光 8 64 8월, 夫人喪을 당하다.
순조 32 1832 임진 道光 12 68 4월 3일, 卒하다. ‘忠文’으로 諡號를 내리다. ○ 6월, 驪州 孝子里에 장사 지내다.
순조 33 1833 계사 道光 13 正祖의 廟庭에 배향되다.
헌종 7 1841 신축 道光 21 利川 加佐洞으로 移葬되다.
철종 5 1854 갑인 咸豐 4 三男 金左根이 活字로 문집을 간행하다.
철종 8 1857 정사 咸豐 7 楊州의 石室書院에 追配되다.

기사전거 : 

神道碑銘(哲宗 撰, 楓皐集, 保景文化社), 藫庭遺藁(金鑢), 朝鮮王朝實錄 등에 의함

편찬및간행

저자는 安東金氏 金尙憲의 후손으로서 일찍부터 관직에 진출하여 正祖의 신임을 받았고, 純祖 이후로는 純元王后의 아버지로서 國政의 實權을 장악하였다. 학문적으로는 農巖 金昌協과 三淵 金昌翕에서 渼湖 金元行과 止菴 金亮行으로 이어지는 文學과 道學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燕巖一派의 학자들과 교유를 통하여 北學과 稗官小品에 몰입하기도 하였다.

본 문집의 1854년 8월에 從姪 金興根이 쓴 跋文에는 “長子 尙書公이 文體別로 編輯하였고 季子 元輔公이 刊行하였다.”라고 한 것으로 보면, 문집의 편집은 長男 金逌根이 하고, 刊行은 三男 金左根이 한 것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저자의 從兄인 金龍淳에게 出系한 장남 김유근은 저자가 죽자 遺文을 수집하여 편차까지 완료하였으나, 끝내 문집의 간행을 이루지 못하고 1840년 사망하였고, 김유근이 만든 稿本을 가지고 저자의 삼남인 김좌근이 1854년 整理字로 印行하였던 것이다.《초간본》

정리자는 1792년 제작된 후로 鑄字所에 보관되어 榜目, 儀軌,「弘齋全書」 등 官府文書나 御製 등의 인쇄에 쓰이던 활자였는데, 본 문집이 이 활자로 인행된 것은 김좌근이 당시 안동김씨 勢道政治의 핵심으로서 領議政의 자리에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본집은 규장각(奎1736, 奎2942, 古3428-293),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187, 일산古3648-文10-89),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D1-A53),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의 문집은 이후로 活字나 木板으로 重刊되지는 않았으나, 후손 金廣漢이 1986년 保景文化社를 통해 影印하였다. 이 영인본은 초간본을 底本으로 삼고, 저자가 1799년 迎春軒에서 正祖를 알현했던 일을 기록한 필사본 〈迎春玉音記〉와 1860년 哲宗이 짓고 외손 南秉哲이 쓴 神道碑銘, 1860년 趙斗淳이 짓고 韓濩의 글을 集字한 墓表를 卷末에 첨부하였으며, 삼남 김좌근의「荷屋遺稿」와 손자 金炳冀의「思潁詩文抄」를 附集하여 영인하였다.

본서의 저본은 1854년 정리자로 인행된 초간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장본(한46-가187)이다.

序(哲宗 撰), 跋(金興根 撰), 影印本楓皐集(保景文化社), 韓國古印刷技術史 등에 의함

구성과내용

본집은 16권 8책이다. 卷首에 哲宗이 지은 序(1854년)와 總目이 있고, 卷末에 鄭元容, 金興根, 趙斗淳이 지은 跋(1854년)이 있다. 卷마다 目錄이 있다.

권1~6은 詩 794題이다. 지은 시기를 알려 주는 간지가 붙어 있지 않아 정확한 저작 연대를 알 수는 없으나, 제목에서 드러나는 사건을 통해 대략적으로 유추해 보면,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권1은 1783년부터 1800년까지, 권2는 1801년부터 1809년까지, 권3은 1810년부터 1814년까지, 권4는 1815년부터 1820년까지, 권5는 1821년부터 1826년까지, 권6은 1827년부터 1831년까지의 시이다. 斗室 沈象奎, 藫庭 金鑢, 屐翁 李晩秀, 竹石 徐榮輔, 金陵 南公轍 등과 어울려 지은 시가 많이 보인다. 권1의 〈遊淸潭〉은 19세 때인 1783년에 金照와 仁壽峯 아래 淸潭으로 유람하여 지은 시이고, 〈讀山谷詩集〉은 黃庭堅의 시를 읽고 지은 시로서, 저자 자신의 문장에 대한 포부를 느낄 수 있는 시이다. 권2의 〈池亭聽禹伶俳曲戱賦〉는 판소리 소리꾼 禹家의 공연 모습을 그린 작품이고, 권3의 〈贈琴師〉는 저자가 49세 때인 1813년 직접 거문고를 배우는 어려움을 묘사해 지은 시로서, 거문고를 가르치는 樂工에게 지어 준 시이다. 권4의 〈昔訓〉은 옛 성현의 말씀에 따라 세속의 아첨하는 말과 음탕한 소리에 대해 귀를 막고 듣지 않겠다는 내용의 시이고, 〈火田行〉은 苛斂誅求에 시달리는 火田民의 고통스런 삶을 묘사한 작품이다. 권5의 〈秋懷〉는 21수의 長篇詩로서, 1826년 62세 때에 가을을 맞이하는 老年의 심정을 읊은 시이고, 권6의 〈花樹亭〉은 평안도 관찰사로 있던 再從弟 金蘭淳이 저자에게 용돈을 보내 주자, 그 돈으로 花樹亭을 건립하고 지은 시로서, 훗날 이 정자에 앉아 형제간의 회포를 풀고 자손에게 우애의 정신을 전하자는 내용이다.

권7~8은 疏箚 60편이다. 1788년에 奎章閣 待敎를 사양하는 상소를 필두로 이조 참의, 병조 판서, 訓鍊大將, 禁衛大將, 대제학 등의 관직을 사직하는 소차와 賞典을 사양하는 소차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권9는 奏 3편, 啓 2편, 應製文 14편, 祭文 20편이다. 奏 가운데 〈關西蔭仕變通奏〉는 1824년에 올린 것으로서, 蔭仕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西道 지역에 대한 人事를 개선할 것을 아뢰는 글이고, 〈庶類疏通收議〉는 1823년에 올린 것으로서, 사람의 貴賤과 窮達은 모두 후천적인 것임을 前提하고, 庶類일지라도 家門이나 能力을 고려하여 등용해야 함을 건의한 글이다. 應製文으로는 正祖의 諡冊文, 惠嬪 洪氏ㆍ孝懿王后ㆍ綏嬪 朴氏ㆍ孝明世子의 誌文, 四忠祠ㆍ趙泰采에 내린 致祭文 등이 있다.

권10은 書 37편이다. 李時秀, 李秉模, 金載瓚, 南公轍, 李友信, 鄭元容, 沈魯崇 등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李時秀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純祖의 登極 20주년을 맞이하여 陳賀하는 일과 尊號를 올리는 일에 대해 답한 내용이 있고, 金載瓚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평안도에서 戶布를 시행하고자 하지만, 지금의 급선무는 백성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권11은 碑銘 5편, 墓碣 10편이다. 비명으로는 申崇謙의 神道碑銘, 李頤命의 遺像을 봉안한 南海 鳳川祠의 事蹟을 기록한 碑, 箕子를 제향하는 平壤 仁賢書院의 廟庭碑 등이고, 墓碣은 李運永, 申靖夏, 先祖 金永銖 등에 대한 것이다.

권12는 墓誌 7편, 墓表 4편, 行狀 3편이다. 墓誌는 從叔父 金履長, 子婦 完山李氏, 李濟萬 등에 대한 것이고, 묘표는 부친 金履中, 從叔父 金履素, 祖父 金達行, 任元亮에 대한 것이고, 행장은 朴審問, 兪最基, 伯父 金履基에 대한 것이다.

권13~14는 諡狀 12편으로, 金時粲, 沈豐之, 李台重, 金富弼 등에 대한 것이다.

권15는 序 10편, 記 8편, 跋 7편, 箴 1편, 銘 5편, 頌 2편, 贊 1편, 傳 4편이다. 序로는 屐翁 李晩秀의 아들로서 19세로 요절한 李元愚의 遺稿에 대한 〈雲石小稿序〉, 英祖 때의 문신인 尹心衡의 문집에 대한 〈臨齋集序〉, 조선 초기의 음악가인 朴堧의 문집에 대한 〈蘭溪遺稿序〉 등이 있다. 記로는 平壤의 挹灝樓, 安東 關王廟, 義城 聞韶樓 등의 重修記와 1819년 趙學殷, 金鑢 등과 奉元寺를 유람한 기록인 〈記奉元寺遊〉 등이 있으며, 跋로는 老稼齋 金昌業의 遺墨에 쓴 것, 「璿源譜略」에 쓴 것, 부친 김이중의 遺文에 쓴 것, 趙榮順의 文集인 「退軒集」에 쓴 것 등이 있다. 傳은 譯官으로서 文章에 뛰어났던 李彦瑱, 狂症을 지니고 살았으나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충의로웠던 韓顚, 뛰어난 학식을 가지고 숨어 살면서 그 이름이 正祖에게까지 알려졌었던 李思問, 牛溪 成渾의 門人으로서 임진왜란 때 晉州城에서 殉節했던 梁山璹에 대한 것이다.

권16은 雜著 29편이다. 〈書家藏西漢文後〉는 1816년 4월에 쓴 글로서, 辛壬士禍 이후 곤궁했던 저자의 집안 형편을 엿볼 수 있는 글이고, 〈題謙齋畫帖〉은 謙齋 鄭歚의 畫帖에 쓴 글로서, 정선과 沈師正을 비교하여 평한 글이며, 〈雜錄〉은 曾先之의 「十九史略」, 儀狄의 造酒, 흰 까치, 紫霞 申緯의 詩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卷末에 鄭元容, 金興根, 趙斗淳이 1854년에 쓴 跋이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양기정(梁基正) |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