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1세 |
履慶 |
履中 |
履基 | |||
22세 |
明淳 生父 履基 |
祖淳 |
龍淳 | |||
23세 |
興根 |
應根 |
弘根 |
左根 |
元根 |
逌根 生父 祖淳 |
24세 |
炳德
|
炳始 |
炳溎 |
炳冀 生父 泳根 |
炳地 |
炳㴤 生父 弘根 |
25세 |
宗圭 |
容圭 |
性圭 |
用圭 |
錫圭 |
定圭 |
영안 부원군의 사손 김석규(祀孫 金錫圭 1864~1905) 할아버지
한국학 홈 > 역사와 인물 > 조선의 방목 > 김석규(金錫圭)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고종(高宗) 22년
과거시험연도 : 1885 을유
시험명 : 증광시(增廣試)
등위 : 병과27(丙科27)
[인적 사항]
성명(姓名) : 김석규(金錫圭)
본관(本貫) :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 경(京)
[이력 및 기타 사항]
전력(前歷) : 좌세마(左洗馬)
[가족사항]
부(父) : 김병지(金炳地)
생부(生父) : 김병수(金炳洙)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bang/detail?sn=1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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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규[ 金錫圭 ]
1864(고종 1)∼?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이조참판 원근(元根)의 손자이며, 병수(炳洙)의 아들로 병지(炳地)에게 입양되었다.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조순(祖淳)의 사손(祀孫)으로서 고종의 특명에 의하여 1886년 교관(敎官)이 되고, 그해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89년 규장각대교에 임용되었다.
그 뒤 시강원겸문학·성균관대사성으로 승진되고, 1893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건양·광무연간에 수구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봉상사제조·궁내부특진관 등 왕실과 밀접한 관직으로 중용되었다. 특히, 1899년에는 부임은 하지 않았지만 일본주재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법부 법무국장·협판을 비롯하여 법률기초위원회 위원장, 평리원 판사, 한성재판소 수반판사, 형법교정관을 지냈다.
1904년에는 법부협판으로서 장호익(張浩翼) 등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자들이 유길준(兪吉濬)·이완용(李完用)과 같은 친일파를 내세워 역모한 사건에 강력히 대처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1903년 영조 때 편찬된 ≪문헌비고 文獻備考≫를 보수할 것을 건의하였고, 그 증보작업의 당상(堂上)이 되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참고문헌≫ 國朝榜目
백과사전 카테고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인물 > 문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인물 > 법조인
출처: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33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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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묘소는 양평군 개군면 계전리 새텃말에 있습니다. 이곳에는 영안 부원군의 부친인 김이중(金履中) 묘소가 자리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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