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贊成公(達行) 가문

영안 부원군의 사손 김석규(祀孫 金錫圭 1864~1905)

추읍산 2009. 9. 3. 13:28

 

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0세 金達行

21세

履慶

履中

履基

22세

明淳

生父 履基

祖淳

龍淳

23세

興根

應根

弘根

左根

元根

逌根

生父 祖淳

24세

 

炳德

 

炳始

炳溎

 

炳冀

生父 泳根 

炳地

 

炳㴤

生父 弘根

25세

宗圭

容圭

性圭

用圭

錫圭

定圭


 

                          

영안 부원군의 사손 김석규(祀孫 金錫圭 1864~1905)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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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고종(高宗) 22년

과거시험연도 : 1885 을유

시험명 : 증광시(增廣試)

등위 : 병과27(丙科27)


[인적 사항]

성명(姓名) : 김석규(金錫圭)

본관(本貫) :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 경(京)


[이력 및 기타 사항]

전력(前歷) : 좌세마(左洗馬)


[가족사항]

부(父) : 김병지(金炳地)

생부(生父) : 김병수(金炳洙)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bang/detail?sn=1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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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규[ 金錫圭 ]

1864(고종 1)∼?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이조참판 원근(元根)의 손자이며, 병수(炳洙)의 아들로 병지(炳地)에게 입양되었다.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조순(祖淳)의 사손(祀孫)으로서 고종의 특명에 의하여 1886년 교관(敎官)이 되고, 그해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89년 규장각대교에 임용되었다.


그 뒤 시강원겸문학·성균관대사성으로 승진되고, 1893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건양·광무연간에 수구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봉상사제조·궁내부특진관 등 왕실과 밀접한 관직으로 중용되었다. 특히, 1899년에는 부임은 하지 않았지만 일본주재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법부 법무국장·협판을 비롯하여 법률기초위원회 위원장, 평리원 판사, 한성재판소 수반판사, 형법교정관을 지냈다.


1904년에는 법부협판으로서 장호익(張浩翼) 등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자들이 유길준(兪吉濬)·이완용(李完用)과 같은 친일파를 내세워 역모한 사건에 강력히 대처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1903년 영조 때 편찬된 ≪문헌비고 文獻備考≫를 보수할 것을 건의하였고, 그 증보작업의 당상(堂上)이 되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참고문헌≫ 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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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인물 > 법조인

출처: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33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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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묘소는 양평군 개군면 계전리 새텃말에 있습니다. 이곳에는 영안 부원군의 부친인 김이중(金履中) 묘소가 자리한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