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문화유산

방초정의 140927

추읍산 2014. 9. 2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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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초정에 얽힌 슬픈 이야기

 

이정복(호 : 방초정)에 의해 처음 세워질 때는 조상들을 추모하고 선비들이 정담을 나누는 쉼터의 목적이었겠으나, 그와 함께 정자 앞의 연못에 얽혀 전해져오는 애틋한 사연이 더 주목을 끈다.

임진왜란 당시 연안이씨 이정복과 화순최씨 정려부인의 애틋한 사랑과 노비 석이(石伊)의 슬픈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정복과 혼인한 새색시 최씨 부인은 꿈같은 신혼생활을 마치고 막 시댁으로 가는 신행길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문에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부산포에 조총을 앞세운 왜병들이 침략해 한양으로 물밀듯이 올라오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시댁에서도 인편을 통해 난리 통에 위험하니 그냥 친정에 머물러있으라는 전갈이 왔다. 그러나 친정부모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출가를 했으니 사나 죽으나 시댁 귀신이 되어야 한다며 조용히 딸의 등을 떠밀었다. 17세의 어린 신부 최씨도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하기로 결심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죽더라도 시댁에 가서 죽겠다며 몸종과 함께 신행길을 재촉했다. 최씨 부인은 몸을 숨겨가며 40여리 길을 걸어 마침내 시댁 마을 어귀에 당도했다.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돌연 들이닥친 왜병들과 마주쳤다. 뒤 쫒아오는 왜병들에게 잡혀 능욕을 당할 위기에 처한 최씨 부인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 마을 앞 웅덩이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이때 부인을 따르던 몸종 석이도 주인을 구하려고 뒤따라 연못에 뛰어들었는데 둘 다 죽고 말았다.

 

사랑하는 신부를 졸지에 잃은 신랑은 부인을 잊지 못해 여러 해 동안 웅덩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후손을 봐야한다는 문중의 권유로 훗날 재혼을 하였으나 못 옆에 정자를 지어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부부의 인연을 영원토록 함께 하기를 기원했다. 그렇게 먼저 간 부인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정자가 방초정이며, 웅덩이를 확장해 최씨의 연못이라는 의미로 ‘崔氏潭’이라고 명명했다. 그 애틋한 사연이 노비 석이의 기막힌 사연과 함께 전해진다. 당시 최씨 부인을 따라 투신한 석이의 충성심에 감복한 연안이씨 문중에서 석이의 비석을 따로 만들었으나 차마 세우지 못하고 연못에 던져두었는데, 몇 년 전 이 연못에서 비석을 발견하여 전설처럼 떠돌던 노비 이야기가 사실임이 밝혀졌다. 현재 정자 한쪽에 인조가 내린 ‘어필정려문’과 정려각 앞에 ‘忠奴石伊之碑’라는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있어 이곳을 찾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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