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황산과 그 문우들

퇴송된 무명을 다시 납부하다 (還納退木)

추읍산 2019. 10. 19. 11:35

고금소총 –282화 
 
옛날 전라도 담양에 시씨(柴氏) 성을 가진 아전이 있었는데그는 대동색(大同色)1)의 임무를 맡고 있었다 1)대동색(大同色) : 조정에 바칠  쌀이나 무명을 관리하는 아전. 담양은 해마다 조정에 바치는 세금으로 베를 바치게 되어 있어이 아전의 임무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어느 해 이 아전은 상납할 무명 20()을 싣고 서울로 향하는데출발에 임박하여 관장이 붓 세자루와 종이 세 묶음을 편지와 함께  주면서 당부하는 것이었다. "이 편지와 물품은 가는 길에 서울 남촌(南村) 김생원 댁에 전하도록 하라차질 없이 전해야 하느니라."관장의 당부를 받은 아전은 마침내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먼저 무명을 바치기 위해 선혜청(宣蕙廳)으로 가서 싣고 온 면화를 마치니, 등급이 차하(次下)로 매겨져 가져온 면화를 모두 퇴송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다시 품질이 좋은 것으로 대체시켜야 하니, 고을로서는 대단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곧 아전은 이 사실을 급히 담양 관장에게 보고하게 한 다음, 김생원 댁을 찾아 나섰다. 시골에서 가져온 용돈 꾸러미를 허리에 차고는 남대문으로 들어와 김생원 댁에 이르러 보니, 대문은 찌그러져 있고 벽은 금이 가고 구멍이 나 있어, 어떤 총각과 깊은 사랑에 빠져 속살을 맞댔던 그 관계를 궁상맞은 모습을 형언하기 어려웠다.

김생원은 부귀를 멀리 하고 도덕이 높아 지방의 관장들이 물품을 상납하면 곧 퇴송하고 절교하기 때문에, 담양관장도 그것을 알아 붓과 종이를 갖다 드리라 한 것이었다. 아전이 들어가서 편지와 가져온 물품을 올린 다음 뜰에 서서 쳐다보니, 김생원의 얼굴에는 뼈만 앙상하여 주린 기색이 역력했다밖으로 나온 아전은 그 모습이 가엾어 어정거리고 있으니, 마침 생원 댁 종이 대문을 나오면서 탄식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전이 그 까닭을 물어 보았다. "무슨 일로 그렇게 땅이 꺼지도록 한탄을 하는고?" "들어 보십시오. 오늘로 벌써 이틀을 굶었는데, 내일 아침 또한 굶게 되었으니 한탄이 안 나오겠습니까?" "그렇다면 생원 어른은 식사를 하시는지?" 아닙니다. 우리 집은 먹으면 다 같이 먹고, 굶으면 주인어른께서도  함께 굶는답니다."  이 말에 아전은 허리에 차고 있던 돈 꾸러미를 풀어 주면서, "이것은 내 노자이니 몇 푼 되지는 않네. 비록 적지만 생원어른 조반을 준비해 드리게."라고 말하며 건네 주었다
 
그러자 주인어른께서 명분 없는 물건은 어떤 것도 받지 못하게 했다며 거절하기에, 뇌물이 아니니 괜찮다고 하면서 주어 보냈다.  종이 그 돈으로 아침 식사를 장만하여 올리니, 생원이 돈의 출처를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종이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리자김생원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그 진심이 가상스럽다고 하면서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에도 아전은 자기에게 남아 있는 돈 두 꾸러미를 가지고 가서 그 종에게 주며, 가져온 돈이 적어 이것뿐이니 잠시나마 생원의 굶주림을 덜어 드리라고 했다.  종이 들어가 이 사실을 고하니, 생원은 그 아전을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물었다.


"너는 무슨 뜻으로 나에게 돈을 주는 것이냐?" . ", 어르신 끼니를 굶는 것이 하도 딱해 보여 소인의 용돈으로 가져온 것을 드린 것이며, 다른 의미는 없사옵니다." "그렇다면 무슨 일로 서울에 왔느냐?" ", 대동목(大同木)을 바치러 상경하였사옵니다."  "그렇다면 대동목은 무사히 모두 납부가 되었느냐?" "아니올시다, 면화의 등급이 낮아서 모두 퇴송되었사옵니다."


"퇴송이라...."생원은 곧 벽에 붙은 헌 종이를 약간 찢더니글자 몇 자를 적어 주면서 일렀다.
"너는 황산대감 댁으로 가서 이것을 갖다 드려 보거라." 아전이 그 쪽지를 황산대감 댁에 갖다 드리자, 대감은 아전을 내려다보고  웃으면서 묻는 것이었다.  "너는 시골에서 올라왔는데, 본시 그 생원을 알고 있었느냐?"  "아니옵니다, 전혀 알지 못하옵나니다."


"이 양반은 평생 누구에게 부탁을 한 적이 없는데, 무슨 연유로 너를 통해서만 이런 어려운 부탁을 하게 된 걸고?" 이에 아전은 그간의 일을 자세히 설명드리니, 황산대감은 크게 칭찬하고는  선혜청 서리를 불러 명했다. "지금 이후로 담양 고을에서 상납하는 무명은 질의 고하에 관계없이 모두 받아들이고, 지체없이 척문(尺文)2)을 발부해 주도록 하라." 2)척문(尺文) : 한 자 정도의 판자에 쓴 납부증명서.


그러자 선혜청 서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며칠 전 퇴송한 면화를 모두 받아들이고 척문을 발부해 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니 퇴송된 면화를 다시 바꾸어 바치려면 적어도 5, 6백 냥의 추가 비용이 들어야 하는데, 담양 고을로서는 큰 행운인 셈이었다.


곧 아전은 김생원 댁에 가서 인사를 드리니 생원이 말했다. "내 너의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 네 인성(人性)이 남에게 덕을 베푸는 것이라 그 마음을 받은 것이니라." 이러면서 답장을 써 주기에 받아 가지고 담양으로 돌아오니 관장은 생원의 편지를 보고"너의 그 의로운 정신이 아니었다면, 어찌 생원이 그런 부탁을 해주었겠느냐? 만약 그대로 면화가 퇴송되어 내려왔다면 우리 고을이 피폐해질 뻔했도다. 너의 공적이 매우 크도다." 라고 말하며 무한히 칭찬했다.


그리고 관장은 전라감사에게 보고하여, 이 아전의 자손은 대대로  담양 고을 대동색에 임명하고, 어떤 실책이 있어도 면직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을 동헌 들보에 새겨 두라고 명령했다.  그리하여 이 아전의 후손이 잘살아서 뒷날 담양에는 시성(柴姓)이 많이 번성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