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6

조선왕조실록 속의 졸기(卒記)

우리나라에 조상님들이 자리 잡고부터 많은 분이 살다 갔습니다. 우리는 학창 시절 역사를 배웠습니다. 필자의 고등학교 때는 우리나라 역사를 국사라고 불렀지요. 다른 어느 과목보다도 좋아하여 왜 그 방향으로 꿈을 키우지 못했을까? 늦게나마 공부하는 자세로 옮겨 간 것은 조상님 유물을 기증하고 도록이 나올 무렵부터(2009년)입니다. 역사에는 수많은 사람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충신으로 본보기가 되는가 하면, 나락으로 떨어져서 추한 모습으로 각인된 인물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현대에 와서 TV가 보급되고 역사를 소재로 한 기획물이 파고들면서 역사와 선조 님 행적에 관심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상 속에 진실이 얼마나 담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흥미를 끌어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제작물로만 시도되..

조선왕조실록(순조) 속의 효명세자와 김유근, 1827년 9월~1828년 5월

아랫글 출처: http://sillok.history.go.kr ------------------------ 1827년 9월 10일 : 상호 도감(上號都監)의 별단(別單)을 내려 도제조 한용귀(韓用龜)에게는 아들·사위·아우·조카 중에 초사(初仕)에 채용하고, 제조 정만석(鄭晩錫)·박종훈(朴宗薰)에게는 가자하고, 조종영(趙鍾永)에게는 숙마(熟馬)..

조선왕조실록(순조) 속의 효명세자와 김유근, 1827년 윤5월~10월

아랫글 출처: http://sillok.history.go.kr ------------- 1827년 윤5월 2일: 전 병조 판서 김유근(金逌根)을 서용하여 도로 제수하도록 하령하고, 출사하라고 신칙하였다. 1827년 윤5월 4일: 병조 판서 김유근이 상서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내가 경을 보지 않은 지 이미 몇 개월이 되었고, 경이 또..

조선왕조실록(순조) 속의 효명세자와 김유근, 1827년 5월

아랫글 출처: http://sillok.history.go.kr -------------------------- 1827년 5월 1일: 1번째기사 하교하기를, “조경진의 일은 중신(重臣) 한 사람을 논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여 처벌의 요청이 파직의 가벼운 벌에 그쳤다. 그러나 그 흉참한 의도가 기회를 틈타 이간시키려는 꾀였기 때문에 소조(小..

조선왕조실록(순조) 속의 효명세자와 김유근, 1827년 3월~4월

아랫글 출처: http://sillok.history.go.kr ------------------ 1827년 3월 26일: 김유근(金逌根)을 평안도 관찰사로 삼았으니, 원임 대신(原任大臣)이 의논하여 천거한 것이다. 1827년 4월 1일: 평안 감사 김유근(金逌根)이 상서(上書)하여 새로 제수된 번임(藩任)을 사양하였는데, 답하기를, “경과 ..

조선왕조실록(순조)에 나타난 효명세자(翼宗, 1809~1830)와 김유근(金逌根,

효명세자는 1827년 2월 9일 부친인 순조의 대리청정 명을 여러 번 사양 끝에 2월 18일 받았습니다. 3년여의 대리청정에서 본 바와 같이 어둠을 밝혀주는 등댓불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셨는데 1830년 윤사월 22일 병을 얻어 어의들의 각별한 치료에도 효험을 보지 못하고 5월 6일, 22세의 젊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