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식 2

홍대식 형님을 보내다

외사촌 형님으로는 유일한데 의현 결혼식이 2016, 3, 26일있었고 그때 뵈었는데 이 세상에서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명절 때는 꼭 전화를 주셨고 드문드문이지만 만났는데 근래에는 소식이 끊겨 모두가 제 못난 탓입니다. 2년 전, 연말인가? 결혼한 의현 아기 소식 없느냐는 형수님과의 통화를 끝으로 모두 제 못난탓입니다. 안 좋은 느낌 속 최근에는 전화하기조차 두려웠고 23일 오후 4시 41분 주일이고 성당에 다녀와 집에 있는데 은경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불길한 예감 속 무슨 일 있느냐? 좋은 일이냐? 나쁜 소식이냐? 적중했고 대식 오빠가 한남동 순천향 병원 장례식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가시고 추억으로만 자리 잡아 오늘 장례절차를 진행하였습니다. 먼저 가신 가족과의 재회 그 자리에는 분명 고모님(저의 어머님..

외사촌 형님과 어울렸던 어린 시절

6.25 때 잠시 시골 우리 집으로 피난 오신 외가 식솔들은 얼마 안 되어 그해(1950년) 가을경인가? 되돌아갔습니다. 외사촌 형제들과 집 옆, 뭍 밭 8대조(諱 達行) 묘역에서 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후 1.4 후퇴 때 저희는 흥천면 효지리로 피난하였고 외가는 군포로 피난하였다가 그만 미군 전폭기의 공습으로 외할머니와 외숙모, 외사촌 형제들, 향리에서 대동한 이승재? 누님이 방공호로 피신하였다가 모두 부둥켜안고 운명하였음은 이미 쓴 글( 6, 25전쟁 속의 어린 시절 )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때 논두렁으로 피한 외삼촌과 큰형만 살아남았는데 그때 상황이야 오죽했겠습니까? 1953년, 7월 휴전협정으로 총성은 멈췄고 외삼촌과 홍대식(1938년생으로 필자보다 6년 연상) 형은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