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108년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한반도와 북만주 일대에 거주하던 우리 민족은 그 삶의 모습을 어떻게 전개하였을까? 이를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2004년도 발행)를 통하여 추적하였습니다.
부여(夫餘)
만주 길림시 일대를 중심으로 송화(쑹화)강 유역의 평화지대를 끼고 발전하였다.
1세기 초에는 왕호(王號)를 사용하였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는 등 국가체제가 발전하였다.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하고였고 특산물로는 말, 주옥, 모피 등을 생산하였습니다.
북으로는 선비족, 남쪽으로는 고구려와 접하였는데 3세기 말의 선비족의 침략으로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고구려에 편입되었다.
행정조직: 왕과 그 이래에는 가축의 이름을 따 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대사자, 사자 등의 관리가 있었다. 가(加)는 각기 행적구역인 사출도를 다스리고 이는 왕이 직접 통치하는 중앙과 합쳐 5부를 이루었다.
왕의 추대: 각 가들이 모여 왕을 선출하였다. 국가의 자연재해를 입어 농사가 잘 안 되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왕에게 책임을 묻기도 하였다.
순장제도의 출현: 왕이 붕어하면 많은 사람을 껴뭍거리(부장품<副葬品>)와 함께 묻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법률: 부여에는 사회의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고조선의 8조금법과 비슷한 법을 만들었는데 전하여 오는 내용으로는 ① 살인자는 사형에 처한다. ②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는 물건 값의 12배로 배상한다. ③ 간음한 자와 투기가 심한 부인은 사형에 처한다.
영고제: 수렵 사회의 전통을 보여주는 제천(祭天)의식으로써 매년 12월에 열렸다. 노래와 춤을 즐기고 죄수를 풀어주기도 했으며 전쟁이 일어나면 소를 잡아 그 굽으로 길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부여에 대하여는 아래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의 기록을 안내합니다.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5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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