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저와 동예 1) 위치 : 함경도(옥저) 및 강원도 북부(동예)의 동해안 2) 정치 : 군장이 자기 부족 지배, 고구려의 압력과 수탈 → 큰 정치 세력 미형성 3) 옥저 ① 경제 : 농경(토지비옥), 해산물(어물, 소금)풍부→〔 고구려〕에 공납으로 바침 ② 풍속 : 민며느리제, 골장제(가족 공동 무덤) 4) 동예 ① 경제 : 농경, 방직 기술 발달(명주, 삼베), 해산물, 특산물(단궁, 과하마, 반어피) ② 풍속 : 무천(제천행사, 10월), 족외혼, 책화 삼한(한) 1) 형성 : 한강 이남의 진(辰)과 고조선 유이민 융합 2) 지역 및 세력 ① 마한 : 천안․익산․나주 중심의 경기․충청․전라도 지방 54개 소국 ② 진한 : 대구․경주 지역, 12개 소국으로 구성 ③ 변한 : 김해․마산 지역, 12개 소국으로 구성 3) 정치 : 마한의 목지국 지배자가 삼한 전체 영도, 대군장, 소군장 4) 소도(별읍) : 농경과 종교 의례를 주관하는 [ 천군 ]이 지배, 군장의 세력이 미치지 못함 5) 경제 ① 농경 발달 : 철제 농기구 사용, 벼농사 성행(저수지 축조) ② 철 생산(변한) : 낙랑, 왜 등에 수출, 화폐처럼 사용 6) 풍습 : 반움집, 귀틀집, 두레(작업공동체), 제천행사(5월 수릿날, 10월 계절제)
삼국유사는 고려말기 충렬왕때(1280년대) 일연이 지은 역사책입니다. 고대로부터 전해내려온 신화와 전설, 특히 건국신화나 불교관련 전설을 포함하여 삼국시대의 역사를 정리한 책입니다. 이미 고려중기 인종때(1140년대) 김부식이 주도하여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있었지만 거기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역사에 대한 내용은 잘 정리되어 있으나 고조선사나 가야사, 그리고 건국이나 불교관련 설화는 많지 않았습니다. 고조선사는 워낙 신화적인 내용이 많고 구체적인 사실을 전하는 기록은 부족하였고, 가야는 신라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부수적으로 다루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하여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은 고조선이 중국 한나라에 의해 멸망할 무렵(기원전 2세기 전후무렵)에 각 지역에 등장한 작은 나라들입니다. 물론 부여나 고구려는 계속 성장하여 고대국가라고 할 수 있는 큰 나라로 발전하였지만 옥저,동예는 일찍 부터 고구려에 통합되었습니다. 그런데 삼한은 3개의 나라가 아니라 수십개의 작은 나라로 이루어진 연맹체 혹은 그들이 모여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삼한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한 마한은 처음에는 그냥 '한(韓)'으로 불리다가 진한과 변한이 등장하면서 '韓 가운데 으뜸이라는 의미에서 '맏한'이라 불리게 되었고 그말이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마한(馬韓)'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입니다. 현재의 경기,충청,전라 일대에 걸쳐 수십개의 작은나라[小國]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목지국이라는 나라와 백제국이라는 나라가 가장 강력했고, 결국 선진적인 부여와 고구려 유민이 합세한 '백제국(伯濟國)'이 마한지역을 통합하고 '백제(百濟)'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진한(辰韓)은 현재의 경상도 일대로서 12개 내외의 작은나라[小國]를 통칭하거나 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그 가운데 사벌국(상주), 다벌국(대구), 사로국(경주) 등이 경쟁하다가 사로국(斯盧國)에 의해 통합되면서 '신라(新羅)'로 성장하게 됩니다. 변한(弁韓)은 현재의 전라동부지역과 경남동남부지역 일대로서 12개 내외의 작은나라들이나 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나중에는 6개의 세력이 시기에 따라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삼국유사 등에 나오는 6가야입니다. 동시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 초기,중기에는 구야국(금관가야), 중기,후기에는 다라국(아라가야), 후기에는 가라국(대가야)이 각각 맹주의 역할을 하면서 주변의 여러 가야소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 백제나 신라 같은 통합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신라에 의해 통합됩니다. 부여는 현재의 길림시일대를 중심으로 한 길림성 중서부지역에서 위만조선이 성립 무렵(기원전 2세기 초 전후) 고조선의 유민들과 길림지역의 예맥세력에 의해 성립된 나라로서, 위만조선이 멸망 무렵 등장한 고구려와 함께 기원후 3세기 후반경까지 세력을 겨루었으나 북방종족 가운데 가장 큰 세력인 선비족의 침입을 받아 급격하게 쇠퇴하여 결국 5세기 후반무렵부터는 사실상 고구려에 속하게 됩니다. 고구려는 현재의 환인-집안일대에서 처음에 4부족이 경쟁을 벌이며 성장하다가(기원전 1세기 전반) 추모(주몽)집단이 이끄는 계루부세력에 의해 나머지 4부족이 차례로 통합되면서(기원전 1세기 후반) 점점 세력이 커지다가 태조왕대 무렵에는 주변의 옥저를 비롯한 작은나라[小國]을 통합하면서 고대국가로 발전하게 됩니다. 옥저에는 현재의 함경동부지역에서 북옥저와 남옥저가 있는데 국가로 서장하지 못하고 기원후 2세기무렵 고구려 태조왕때에 고구려에 완전히 통합됩니다. 마찬가지로 국가를 이루지 못한 예족세력 가운데 태백산맥 이동의 강원도지역에 사는 종족 혹은 여러 소국들을 모두 일컬어 동예(東濊)라고 불렀습니다.. 대체로 북쪽 세력은 고구려에 의해, 남쪽세력은 신라와 백제에 의해 통합됩니다.
옥저와 동예 함경도 및 강원도 북부의 동해안에 위치한 옥저와 동예는 변방에 치우쳐 있어 선진 문화의 수용이 늦었으며, 일찍부터 고구려의 압력을 받아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각 읍락에는 읍군이나 삼로라는 군장이 있어서 자기 부족을 다스렸으나 이들은 큰 정치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옥저는 어물과 소금 등 해산물이 풍부하였고 토지가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에 소금, 어물 등을 공납으로 바쳤다. 옥저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족의 한 갈래였으나 풍속이 달랐으며 민며느리제가 있었다. 그리고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가매장하였다가 나중에 그 뼈를 추려서 가족 공동의 무덤인 커다란 목곽에 안치하였다. 또 목곽 입구에는 죽은 자의 양식으로 쌀을 담은 항아리를 매달아 놓기도 하였다. 동예 역시 토지가 비옥하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농경, 어로등 경제 생활이 윤택하였다. 특히, 명주와 삼베를 짜는 등 방직 기술이 발달하였다. 특산물로는 단궁이라는 활과 과하마, 반어피 등이 유명하였다. 동예에서는 매년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그리고 족외혼(族外婚)을 엄격하게 지켰으며, 각 부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다. 만약 다른 부족의 생활권을 침범하면 책화라 하여 노비와 소, 말로 변상하게 하였다. 과하마(果下馬) 반어피(班魚皮) 계속 발굴되어 동예의 문화가 고고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삼한(한) 고조선 남쪽 지역에는 일찍부터 진이 성장하고 있었다. 진은 기원전 2세기경 고조선의 방해로 중국과의 교통이 저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에는 고조선 사회의 변동에 따라 대거 남하해 오는 유이민에 의하여 새로운 문화가 보급되어 토착 문화와 융합되면서 사회가 더욱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마한, 변한, 진한의 연맹체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마한은 천안·익산·나주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서 발전하였다.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고 모두 10여만 호였는데, 그 중에서 큰 나라는 1만여 호, 작은 나라는 수천 호였다. 변한은 김해·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진한은 대구·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변한과 진한은 각기 12개국으로 이루어졌고 모두 4만∼5만 호였는데, 그 중에서 큰 나라는 4,000∼5,000호, 작은 나라는 600∼700호였다. 삼한 중에서 마한의 세력이 가장 컸으며, 마한을 이루고 있는 소국의 하나인 목지국의 지배자가 마한왕 또는 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 전체의 주도 세력이 되었다. 삼한의 지배자 중 세력이 큰 것은 신지, 견지 등으로, 작은 것은 부례, 읍차 등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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