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서적

혜거시고(惠居詩稿)

추읍산 2009. 12. 11. 17:32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역사관> 소장.     도록, p144

  

 

혜거시고(惠居詩稿)


김정균(金定均)의 시고(詩稿). 실사본. 주로 사우(士友) 및 집안 사람들과 창수(唱酬)한 시와 기행시가 실려 있다. 권 3의 「려구주해(儷句註解)」는 7언 율시 등에서 사용되는 대구들 중 고전 및 사서(史書) 에 전거(典據)를 가지고 있는 시구들을 가려 뽑은 후 그 전거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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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추읍산)가 쓰는 글


혜거(惠居)는 김성규[金性圭, 구명(舊名)은 김성균(金性均)]의 호(號)다. 따라서 金性圭의 시고(詩稿)인데, 김정균(金定均은 갑신정변 이후 金定圭로 바뀌었다)의 詩稿라고 잘못 적고 있다. 김성규는 김정규와 4촌 간이다. 김성규가 숙부인 김병주에게 올리는 편지도 7편이 보이는데 이는 편지 편에서 소개하겠습니다.


그러면 도록 p43에 나오는 혜거시고를 소개한 글을 보자. -- 생략. 안동김씨 문집에서 가장 주목되는 책은 물론 김유근의 문집인 『황산유고』이나, 그 밖에

『혜거시고(惠居詩稿)』와『향산초고(香山草稿)』 두 책도 주목된다. 『혜거시고』는 필사본으로 김정균(金定均, 金性圭의 詩稿이다.)의 시고로 추정된다. 그것은 이 책이 김정균 가문에 전래되어 왔고, 시문 중에서 김흥근(金興根) 등을 종조(從祖)로 호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혜거시고』의 내용은 주로  사우(士友) 및 집안 사람들과 창수(唱酬)한 시와 기행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권(券) 삼(三)의 「려구주해(儷句註解)」다. 7언 율시 등에서 사용되는 대구들 중 고전 및 사서(史書) 에 전거(典據)를 가지고 있는 시구들을 가려 뽑은 후, 그 전거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할아버지 김유근의 『황산유고』의 시들을 보면 고전 및 사서의 전고(典故)들을 풍부하게 활용하고 있는데, 전고를 풍부하게 활용하는 시작(詩作)은 이 집안의 문학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하 생략. --


항렬 변경에 관하여

위에서 보면 김정균이 김정규로, 김성균이 김성규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이 항렬 변경에 원인이 된 갑신 정변은 1884년(고종21)12월 4일 우정국 낙성식을 계기로 일어났는데 이는 저희 문중 인물인 김옥균[金玉均, 1851~1894 |선원 김상용(仙源 金尙容 1561~ 1637)의 10대손)]이 주도하고 서광범, 서재필, 홍영식, 박영호등이 협력하였으나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갑신 정변(甲申政變)은 조국을 개화시켜 발전시키려는 우국충정이 그 기초이었는데 치밀한 계획 없이 일으켜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갑신정변이 역변(逆變)으로 이해하였고 그것이 정의였다. 그러면 갑신정변은 무엇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공부하기로 하자!

보기 :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34843 


갑신정변에 연루된 주동인물의 가문에는 항렬을 바꾸게 되는데 이와 관계되는 1884, 12, 15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를 옮긴 본 도록 p35의 해제 편을 보자.


<이름을 고치기 위해 고장을 올린 행 부호군 김성균 등에게 체지를 발급할 것을 청하는 이조의 제목>


"이조 계목에, 행 부호군 김성균(金性均)은 이름을 성규(性圭)로 바꾸고, 행 부호군 김정균(金定均)은 이름을 정규(定圭)로 바꾸고, 전 학관(學官) 김제균(金悌均)은 이름을 인규(寅圭)로 바꾸고, 전 별제(別提) 서광익(徐光翼)은 병익(丙翼)으로 바꾸고, 검서관 김능균(金能均)은 이름을 면규(冕圭)로 바꾸고, 전 부사 이희정(李熙正)은 이름을 희중(熙中)으로 바꾸고, 공사관(公使館) 이현구(李鉉九)는 이름을 현국(鉉國)으로 바꾸고,  ---중략. 전례에 의거하여 예문관으로 하여금 체지(帖紙)를 내주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그대로 윤허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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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항렬을 바꾸게 된 갑신정변을 저희 문중은 어떻게 이해하였나. 이를 돈 도록 p40의 해제편에 실린 김성균(후에 김성규로 개칭)이 숙부( 김병주의 生家이므로)인 김병주에게 올린 편지에서 보겠습니다. "이번 역변(逆變)은 차마 다시 입에 올리기 힘드나 하늘이 우리나라를 도와서 다시 평온을 되찾게 되었으니, 모든 백성들이 함께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상(綱常)을 크게  어지럽힌 여러 도당들이 아직 잡히지 않고 있으니 신(神)과 사람들의 분노가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나라에 큰 일이 있는데 아직까지 달려가 문안하지 못하고 있으니, 병 때문에 움직이기 어려워서라고 하나 황송스러움을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대대로 녹을 먹은 척신(戚臣)의 도리가 싹 사라졌으니 이 큰 저버림을 어찌 해야 할 지 밤새도록 안타까워 할 뿐입니다." (김성균의 편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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