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황산과 그 문우들

「추수백운도(秋樹白雲圖)」에 쓰다

추읍산 2009. 12. 23. 13:27

 

 

 

                23.5 × 38

 

                     추수백운도(秋樹白雲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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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秋樹白雲圖 글이 있는 황산유고 영인본(黃山遺稿 影印本)


위에서 보면 본 글인 題秋樹白雲圖, 추사의 지란병분과 관련 있어 보이는 심지기란찬(心芝氣蘭贊), 추수백운도의 또 다른 화제인 秋樹白雲續圖, 추사 관련으로 보이는 畵蘭贊, 이재 권돈인의 벼루에 대한 명인 彛齋硯銘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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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秋樹白雲圖

 

 

추수백운도(秋樹白雲圖)에 쓰다


英英白雲   가볍고 투명한 흰 구름이

繞彼秋樹   저 가을 나무를 감싸네

從子衡門   누추한 집에 그대 따르니

伊誰之故   그 누구 때문인가


山川悠邈   산은 멀리 있고 내는 아득히 흘러가

昔不我顧   예전엔 나를 돌아보지 않더니

何如今者   어째서 지금은

庶幾朝暮   밤낮으로 돌아보는가


많은 사람이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기간중에 그린 영영백운도(英英白雲圖)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추사가 그린  추수백운도(秋樹白雲圖)로 그 안에 글은 황산 김유근(黃山 金逌根1785~1840)이 쓴 것입니다. 그러면 위 추수백운도는 무엇인가? 이를 추적합니다. 양평군에서 2009년 발행한 안동김씨 기증유물 도록에 실린 황산유고(黃山遺稿)를 보면(p481~482) 위 秋樹白雲圖글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단짝 친구이던 두 분은 한때 소원(疎遠)한 때가 있었던가 봅니다. 그런 마음을 추사가 그린 그림 속에서 황산이 글로 표현한 것입니다. 때는 추사가 제주도 유배되기 전인, 추정하면 1833~1836년 이라고 판단합니다. (특히 1833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무렵에는 황산과 추사의 우정이 다시 꽃 피어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 유배 시절에 그린 그림이 아님은 1840년 12, 17일 운명하신 황산이, 추사가 제주도 유배 시절(1840, 9~1848, 12) 에 그린 위 그림을 보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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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립니다 : 2010, 06, 01 秋樹白圖를 秋樹白바로 잡습니다. 글을 퍼 가신 분이나 제가 타곳 영영백운도 글의 단  댓글 등에서 위 (구름 운)임을 알려 드립니다. 아울러서 본 추수백운도 등이 있는 황산유고 영인본을 추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