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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영혼의 쉼터] (1) 절집에 들르다 선암사

추읍산 2011. 12. 8. 18:05

 

 

[내영혼의 쉼터] (1) 절집에 들르다 선암사
봄산에 물든 어여쁜 뒷모습  값싼 번뇌는 어느덧 바람에 …

 


영혼을 말갛게 세탁해 주는 공간들을 찾아가는 새 시리즈 '내 영혼의 쉼터'를 시작합니다. 고즈넉한 절집들과 아름다운 성당,예쁜 교회,둥근 지붕의 모스크 등 종교적인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현재 연재중인 '산&산'은 새 시리즈와 함께 번갈아 가며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조계산 자락에 자리잡은 태고총림 선암사(仙巖寺)는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려면 마땅히 차에서 내려야 한다. 우리는 매표소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서 절집으로 향한다. 우리는 1㎞ 정도의 흙길을 걷게 될 것이다.

문득 바람이 댓잎들을 쓰다듬으면서 우리를 앞질러 간다. 흙길 왼편으로는 옥빛과 밤색을 닮은 맑은 물이 몸을 뒤채며 흘러내리고 있다. 우리는 물의 양과 물빛에 감탄하며 걷는다.

그때,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문화재청이 두 그루 나무 사이에 걸어 놓은 것이다. '문화유산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문화재사범(도난·도굴) 신고 ○○○-○○○○'

아닌게 아니라,오래된 절집에는 후불탱(불상 뒤쪽 벽면에 붙이는 불화)을 비롯해 귀한 문화재들이 더러 있는데,이것들을 훔쳐서 생계를 도모하는 못된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그런데,이런 유의 일들은 저 옛날에도 횡행했던 모양이다.

· 절집의 무뢰한들

선암사 '대웅전(大雄殿)'의 현판 글씨에 얽힌 사연이 그러하다. 이 현판의 오른편 윗부분에는 글쓴이의 이름이 마치 두인(頭印:서화의 오른쪽 위에 찍는 도장)처럼 새겨져 있다. 조선 순조 때 세도를 누렸던 안동 김씨 가문의 영안부원군 김조순(1764~1831)의 관서(款書)이다. 이런 일은 임금의 글씨에서나 가능한 일이라서,세도가의 무례를 탓하는 사람들이 있지만,동행한 법안 김민영(부산상호2저축은행 대표이사)거사는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눌렀던 시절에 지방의 유생들이 절집에 찾아와서 술 내 놔라 밥 내 놔라하며 패악질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절집의 스님들이 김조순의 힘을 빌려 이들을 물리치고자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는 김조순 같은 대유학자가 그 정도로 참람한 무례를 범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부도(浮圖:승려의 사리와 유골을 모신 일종의 무덤)의 숲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양 옆으로 몸 전체가 붉고,낯이 험상궂은 목장승 한 쌍이 나온다. 도둑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조선조 말엽에 조성된 것들을 1987년에 그대로 본떠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오른편 장승에는 '호법선신(護法善神)'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뭇 중생들의 성불을 돕는 착한 신을 뜻한다. 왼편 장승에는 '방생정계(放生淨界)'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산 것들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는 한편 매여 있는 모든 것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선암사는 산 것들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해서 무조건 풀어놓기만 하는 절집이 아니다. 법도 혹은 금도와 산 것들의 자유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 법도와 자유가 공존하는 공간

그런저런 사정은 선원으로 사용되는 달마전과 달마전 뒷산의 야생차밭 그리고 속인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해천당(海川堂)'에서 넉넉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달마전과 야생차밭은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곳이다.

먼저 달마전과 해천당을 살펴본다.

선방들이 ㄱ자형으로 배치된 달마전 안마당에는 높낮이가 다른 수조 네 개가 마른 고목과 대나무 통으로 연결돼 있다. 이 수조 네 개의 용도는 다 다르다.

첫 번째 '상탕'의 물은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와 스님들의 찻물로 쓴다. 두 번째 중탕은 일반 음용수인데,밥도 이 물로 짓는다. 중탕의 물을 떠서 한 모금 머금어 보니 첫 맛은 쌉싸래한데 뒷맛은 고로쇠 수액처럼 달큰하다. 세 번째 하탕은 옷가지를 빨 때,나머지 허드레탕은 신발 등을 씻을 때 쓴다. 각 탕들을 잇는 대나무통 끝 부분에는 '한 일(ㅡ)'자로 구멍을 뚫어놓았는데,물들이 이 구멍을 통해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이 상당히 앙증맞다.

해천당은,지금은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선암사 재래식 뒷간'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달마전이나 종정 혜초 스님의 거처인 '무우전(無憂殿)'과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고,키 낮은 기와담장이 무언의 선을 긋듯 서 있다. 실상 속인과 출가인의 경계를 분명히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절집의 스님들은 이처럼 법도 혹은 금도를 중시하고 존중한다. 가풍이 엄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달마전 뒤편 야생차밭에 들어서면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단정하게 정리정돈된 녹차밭만 보아온 사람들이라면 일순 당황할 법하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녹차나무들이 오솔길 양 옆으로 난 6천여 평의 거친 땅 위에 제 마음대로 자리잡고 있다. 무슨 차밭이 이렇게 무질서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창 꽃을 틔운 산수유 나무와 은행나무,단풍나무 그리고 잡풀들이 녹차나무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어우러져 있다. 이 차밭에서 나는 녹차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나 있다. 값도 상대적으로 높게 매겨진다.

그리 멀지 않은 순천만의 바닷바람이 나무들에게 양기를 불어넣어 주는데,그 힘을 받았는지 녹차나무들은 사토와 자갈이 대부분인 땅속을 헤집고 3~4m 깊이로 뿌리를 내렸다.

따라서 이 절집 스님들의 차맛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무우전에서 만난 종정 스님은 우리가 방석을 내려놓자마자 동행한 승범 스님(선암사성보박물관장)에게 "아,뭐해요. 빨리 차 드려요. 선암사에서는 차 대접이 중요해"라며 채근을 하신다.

이 야생차밭의 또 다른 기특한 점은 절집과 산의 경계를 안온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승범 스님은 "대개 절집과 산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어서 뒷모습이 삭막하기 일쑤인데,선암사의 뒷모습은 이 야생차밭 덕택에 전국에서 첫 손 꼽을 정도로 멋지고 운치가 있다"고 자랑했다. 그때 차밭 저편으로 꿩부부가 한가롭게 거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꿩부부는 건강하고 안정돼 보였다.

선암사는 이처럼 동식물이 자유롭게 자라고 노닐도록 배려함으로써 몸소 '방생정계'를 실천하고 있는 셈인가?

그러니까 선암사의 달마전과 해천당은 인간의 법도를,야생차밭은 자연의 법도를 구현하는 공간들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듯싶다.

· 꿈꾸는 대각암

우리는 다시 해천당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선암사를 나와서 산길을 톺아 올라간다. 300m 정도 되는 지점에 '대각암(大覺巖)'이 있다.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크게 깨친 곳이라고 한다. 가다 보니 왼편 숲 속에 높이 5m는 족히 됨직한 바위에 선이 가늘고 날렵한 선암사 마애여래입상이 새겨져 있다.

대각암에 당도해 보니,융성했을 때는 요사채(절집의 일상 생활 공간)의 규모만 100여 평에 이르렀다고 하는데,지금은 쇠락한 도읍의 옛터처럼 쓸쓸하다. 정면에 의천이 사용했다는,신선을 기다린다는 뜻의 '대선루(待仙樓)'와 최근 완공된 인법당(人法堂:요사채의 방 한 칸 정도를 법당으로 쓰는 집) 그리고 인법당 뒤편의 대각암 부도가 없었다면 아무 것도 모른 채 스쳐 지나갈 뻔했다.

둘러보니 반듯한 절터가 여기저기에 텅 빈 채 누워 있다. 종정 스님은 절집 터로 이만한 곳을 찾기 힘들다면서 방치되다시피한 현실을 안타까워 했었다.

대각암 암주 상명 스님의 방에서 암자 복원을 희망하는 이야기를 듣다가,문득 고개를 돌려 대선루쪽을 바라보니 양편 기둥과 사각형 문틈 사이로 예술사진에서나 봄직한 절제된 풍경이 펼쳐진다. 참다 못해 대선루에 올라 서 보니 눈과 가슴이 무장무장 시원해 진다. 값싼 번뇌들은 대선루의 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풍화되어 간다.



[선암사] 감상 포인트.. 계절을 수놓는 '꽃대궐'

봄의 선암사는 '꽃대궐'이다. 200년 된 영산홍, 300년 된 철쭉을 비롯해 매화 동백 목련 파초 부용 작약 옥잠화 상사화 따위들이 번갈아 피고 진다.

특히 눈길을 잡는 것은 일주문을 통과하자마자 만나는 보라색 수국이다. 조계산의 주된 봉우리가 이미 '장군봉'이라서, 이 절집에서는 굳이 험악한 낯빛의 '사천왕상'을 세우지 않았다. 그 역할을 수국이 고요히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수국은 5월이 되어야 비로소 꽃을 피우는 탓에 우리는 수국의 메마른 모습만 바라봐야 했다.

한때, 물을 기원하는 '청량산 해천사(淸凉山 海泉寺)'라는 이름을 가졌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암사는 대형 화재사고를 여러 차례 겪었다. 그래서 삼인당을 비롯한 연못들과 소화용 물단지가 여럿 눈에 띈다. 종무소 앞에도 연못이 둘 마주 보고 있는데, 한 연못 옆에는 수양버들처럼 물을 향해 축축 가지를 늘어뜨린 '처진올벚나무'가 서 있다. 손님들이 모두 신기해 한다. 해천당 안마당에는 나이든 매화가 한 그루 무슨 상징처럼 서 있다. 선암사에 매화가 피어나면 온 도량이 매화 향기로 뒤덮인다고 한다. 극·락·정·토.

 

 

[선암사] 여행수첩

선암사의 주소지는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이다. 승주IC에서 나와 보성·벌교 방향으로 뻗은 857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죽학삼거리가 나온다. 죽학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2㎞ 정도만 가면 선암사 일반 내방객 주차장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갈아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20년 된 주차장 인근 '장원식당(061-754-6362)'에서 산채정식(1인당 8천원)을 받아 들고 감탄을 했다. 볶은 갓김치를 비롯해 반찬 가짓수가 20가지나 되는데 모두 입맛을 돋운다. 도토리묵(5천원)도 텁텁하면서 고소한 게 맛이 예사롭지 않다. 스님들도 즐겨 찾는다고 한다. 인근의 둘러볼 만한 곳으로는 낙안읍성과 '승보종찰' 송광사가 있다.
/ 입력시간: 2006. 04.13. 10:27

 

 

출처 : 24산우회
글쓴이 : 飛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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