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7일 필자는 속한 안동김씨 서윤공파 종중 회장님이신 김홍진 님, 같은 공간 안이고 대동보 편찬위원장 김위현(전 명지대 사학과 교수) 님, 두 분을 모시고 여주, 이천 지역의 조상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이는 김위현 님 제안에 따른 것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동보(족보)에 올리기 위함인데 인하여 한때나마 그 속에 머물렀음을 감사드린다. 더욱이 김위현 님께서는 관련 일묘사충(一廟四忠)을 집필 중이시다.
한강을 끼고 달리는 6번국도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듯 아름답다. 양평역에서 9시 30분 회동했고 필자는 직계 후손으로서 안내를 맡았다. 가을이 깊어가는데 날씨 흐려 이는 예견된 답사였다. 양평에서 여주로 가는 37번 국도는 가을이 누렇게 익어가고 남한강을 고향인 개군면에서 다시 만났다. 여주 땅으로 들어서니 4대강 사업으로 널리 알려진 이포보가 명물로 자리 잡았다. 대신면 소재지를 벗어나 근처의 일묘사충을 찾았다. 초현리의 아랫새재마을로 작은 능선 올라 첫 만남은 그 정려각이다.
일묘사충이란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사사(賜死) 되신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 1629~1689, 11대조)을 시작으로 1722년(경종 2) 신임사화 때 죽임을 당한 그 아들 몽와(夢窩) 김창집(金昌集, 1648~1722 , 10대조), 손자 죽취(竹醉) 김제겸(金濟謙, 1680~1722 , 9대조), 증손자 취백헌(翠柏軒) 김성행(金省行, 1696~1722)을 말함이다. 이분들은 극심한 당쟁에서 희생당했고 훗날 모두 신원(영조대왕 때) 되고 충신으로 추앙받았다.
일묘사충지문(一廟四忠之門)
아! 이곳이 우리나라 유사 이래 유일무이한 4대에 걸쳐 그것도 장손 계통으로 목숨을 바치신 네 분의 충신을 모신 곳이다. 철종대왕의 친필 편액은 따로 모셔놓고 여초 김응현의 글씨가 대신 자리 잡았다. 이 슬픈 가문의 역사는 한 여인으로 말미암음인데 이는 TV 사극을 통해 널리 알려진 희빈 장 씨(장희빈)이다. 드라마 속 장희빈, 시청률 높아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나 사화(士
정려각 안의 편액 글
忠臣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諡忠正公金省行之門 正宗甲辰(1784, 정조 8)八月命旌今上戊午(1858, 철종 9)三月日加贈上相
몇 일후 21일 다시찾은 모습
세도정치와 무관한 김조순, 의 나라 사랑은 바로 알려지는 중이다.
보기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0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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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분들은 일묘사충 후예로 희비 엇갈려 부끄러운 문중사, 그러나 김조순의 나라 사랑은 바로 알려지는 중이다.
보기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0476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러 뭉게구름 곳곳 흘러 산천과 어우러진 이 땅에서 더는 아픈 피 흘림이 없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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