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졸기(卒記)

영돈녕부사 김이소의 졸기

추읍산 2018. 7. 23. 14:17

정조실록 49권, 정조 22년 8월 24일 을묘 1번째기사 1798년 청 가경(嘉慶) 3년

영돈녕부사 김이소의 졸기


영돈녕부사 김이소(金履素)가 죽었다.

김이소의 자(字)는 백안(伯安)이고 충헌공(忠獻公) 김창집(金昌集)의 증손이다. 영종(英宗) 갑신년에 충량과(忠良科)로 등제(登第)하였는데 상의 총애가 극진하였으며 관직을 두루 거쳐 호조와 양전(兩銓)249) 의 판서에 이르렀고 임자년에 정승이 되었다. 질박 정직하고 확고 부동하여 옳은 것을 보면 굳게 지키면서 흔들림이 없었으므로 재유(才猷)와 문학(文學)으로 세상에 드러난 것은 없었어도 위에서 의지하며 늘 중하게 여겼다. 그의 동생이 홍락순(洪樂純)의 사위가 되었는데, 홍락순이 죄로 쫓겨날 적에 온 조정이 성토(聲討)하였으나 그만은 도헌(都憲)250) 으로 있으면서 의리상 인피(引避)하며 사직하니 상이 늘 그의 돈독한 우애심을 칭찬하였다.

김이소의 병이 위독해지자 상이 어의(御醫)를 보내 진찰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죽자, 하교하기를,

"세상을 하직했다는 소식을 갑자기 듣고 보니 참말이 아닌 것처럼 의심되기만 한다. 놀랍고 가슴 아픈 심정을 어떻게 말로 하랴. 확고 부동하게 지키는 바가 있어 모습만 보아도 어떠한 인물인지 알 수가 있었는데 조정에서 그를 따르고 의지한 것이 과연 어떠했던가. 연전에 한번 겪어보고는 바로 경탄하였는데, 더구나 고가(古家) 교목(喬木)의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지니 더욱 심회를 금할 수가 없다."

하고, 이어 조문·제사·장례·시호(諡號)와 녹봉을 지급하고 고자(孤子)를 녹차(錄差)하는 등의 일을 모두 관례대로 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103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id/kva_12208024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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