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119권, 영조 48년 12월 30일 경인 2번째기사 1772년 청 건륭(乾隆) 37년
성균관 좨주 김원행의 졸기
성균관 좨주(祭酒) 김원행(金元行)이 졸하였다. 김원행의 자(字)는 백춘(伯春)으로 안동(安東) 사람이다. 충헌공(忠獻公) 김창집(金昌集)의 손자인데, 문간공(文簡公) 김창협(金昌協)의 후(後)로 출계하였다. 출생하면서부터 특이한 자질이 있고 기개와 도량이 빼어나니 선배들이 모두 국기(國器)로 허여하였다. 임인년279) 후부터는 산골에 물러가 살면서 오로지 위기(爲己)의 학문에 마음을 썼으니, 대개 문간공의 유서(遺緖)를 소술(紹述)한 것이다. 성명(性命)의 근본을 통견(洞見)하고 이기(理氣)의 묘(妙)를 깊이 탐구(探求)하였는데, 조용히 깊고 깊이 생각하더니 각각 그 극(極)을 이해하였다. 평소에 하는 사업이 평정(平正)·적실(的實)하고, 의리(義理)를 변별함이 엄확·명쾌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한 세상의 유종(儒宗)이 되었고 초선(抄選)이 되어 벼슬이 공조 참의·좨주·찬선(贊善)에 이르렀다. 성상의 권우(眷遇)가 융숭하여 정초(旌招)를 자주 내렸는데, 매양 그 정초가 아니면 가지 않는다는 의리로써 사양하며 종신토록 일어나지 않으니, 조야에서 애석하게 여겼다. 이때에 이르러 졸하였는데, 나이는 71세였으며 《미호집(渼浩集)》 약간 권이 집에 보관되어 있다.
- 【태백산사고본】 79책 119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443면
- 【분류】인물(人物)
- [註 279]임인년 : 1722 경종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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