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blog.naver.com/drkdc/220934501284
지금의 하옥 고택
말이 하옥 고택이지 당사자는 살지 않았는데 왜? 그 이름이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 일설(https://m.blog.naver.com/drkdc/220934501284)에 의하면 1865 년(고종 2)에 하옥의 아들 사영 김병기가 지었다고 한다. 』 99칸 전통 한옥이었고 필자도 1964년경 그곳을 찾은 바 있는데 압도당하는듯했다. 현재는 솟을대문, 담장, 행랑채가 없어지고 안채와 별채 42칸만이 남았고 또한, 마을 입구 쪽 연못도 그 범주 안에 있었다고 한다
1865년 그렇다면, 하옥 운명(殞命) 4년 전이고 흥선 대원군의 힘이 막강할 때다. 하옥(諱 左根 1797 -1869)은 아마도 아들 사영[諱 炳冀 1818년(순조 18) - 1875년(고종 12)]께로부터 지어지고 있음을 보고받았을 뿐일 것이다. 사영은 흥선 대원군 집권 이후 잠시 광주유수로 쫓겨나기도 했지만, 곧 복직되어 이조판서 등 중요 보직을 이어나갔고 만년에는 여주의 우안당(又安堂 지금의 여주 교육청 자리)에서 사셨다는 기록이 있어 고택을 오가셨는가 보다. 고택은 관리인이 있었을 것이고 우안당은 아들(용규)과 손자대에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하옥 고택, 바라보는 눈들이 곱지 않다.
참고
자안당(自安堂)터, 우안당(又安堂)터 : 여주읍 창리 83번지에 있는 터이다. 철종 때 세도재상 김병기(金炳冀)가 이곳에 살면서 자안당이라 하였는데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면서 이 집을 빼앗아 여주군청을 삼았다. 이에 김병기가 바로 옆에 똑같은 집을 짓고 우안당(又安堂)이라 하니, 대원군이 “자식을 낳거든 김병기 같은 놈을 낳아야한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현재의 여주 교육청 자리이다.
발췌 : http://www.yeoju.go.kr/history/jsp/Theme/Theme.jsp?BC_ID=d0236&SearchWord=우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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