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贊成公(達行) 가문

김병주 영세불망비

추읍산 2020. 8. 1. 13:04

 

GC80010483
金炳㴤永世不忘碑
직제학 김상국병주 영세불망비
역사/전통 시대
유적/비
울산광역시 중구 반구동 내황마을
조선/조선 후기
엄형섭,황대일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관련 사항 시기/일시건립 시기/일시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현 소재지성격관련 인물재질크기(높이, 너비, 두께)관리자

1827년 - 김병주 출생
1858년 10월 24일 - 김병주 규장각 직제학 임명
1861년 9월 - 김병주 영세불망비 건립
1887년 - 김병주 사망
울산광역시 중구 반구동 내황마을
비석|선정비
김병주
100㎝[높이]|36㎝[너비]|15.5㎝[두께]
울산광역시 중구청

[정의]

울산광역시 중구 반구동 내황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김병주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김병주(金炳㴤)[1827~1887]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이 안동(安東)이고, 자는 범초(範初), 호는 소산(小山), 시호는 효문(孝文)이다. 1851년(철종 2) 정시 문과[乙科第一人及第出身 3월 21일]에 급제하였다.

[건립 경위]

김병주는 1858년(철종 9) 10월 24일에 규장각 직제학(奎章閣直提學)으로 임명되었다. 배로 공물을 운반하는 일과 관련한 의무를 지고 있던 김병주는 물이 새는 배를 수리하여 공물을 운반함으로써 울산 내황마을 주민들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김병주 영세불망비(金炳㴤永世不忘碑)는 1861년 9월 내황마을 사람들이 마을 제당 앞에 김병주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당시 직제학이던 김병주가 어떤 방식으로 그 일을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위치]

울산광역시 중구 반구동 내황마을 제당 앞에 있다.

[형태]

지붕돌이 없는 형태이다. 비의 크기는 높이 100㎝, 너비 36㎝, 두께15.5㎝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 ‘직제학 김상국병주 영세불망비(直提學金相國炳㴤永世不忘碑)’라는 비의 제목과 김병주의 선정을 기리는 글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 세운 날짜와 주체가 새겨져 있다. 선정을 기리는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덕은 물이 새는 배에 미치고/ 은혜는 공역(貢役)에 가득하네/ 그 은혜와 덕을/ 이 빗돌에 부치네[德洽漏船 恩沾貢役 其恩其德 寓慕于石].”

[현황]

김병주 영세불망비울산광역시 중구청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울산광역시 중구 반구동 내황마을 제당 앞에 박효환 영사비와 나란히 서 있다

[의의와 평가]

울산 지역에 부임한 적이 없는 중앙 관료의 선정을 기리는 흔치 않은 사례의 비석이다.

[참고문헌]

 

울산역사문화대전

 

ulsan.grandculture.net

발췌 : ul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ulsan&dataType=01&contents_id=GC80010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