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庶尹公의 후예

죽소공 묘비석

추읍산 2018. 6. 2. 11:19

5월 20일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리 산 5번지, 석실 묘역에서는 비 피해 복구가 우선 아래쪽에서 있었다. 특히 청음 할아버지 쪽이 컸고 땅이 더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아래쪽 쓸린 부분을 정비하였다. 같은 날 소속 휴암공파에서는 죽소(휘 광욱) 할아버지 묘역에서 비석 위쪽 떨어져 나간 부분을 찾기 위한 땅파기 작업이 있었다. 새로 대치한 비석 아래 방치된 원래의 비석은 위 갓 부분이 조각나 보이 지를 않는다. 이 보이 지를 않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찾아 복원하기 위함이다. 소속 종인 김성한씨 그리고 김근태 교수와 양경직 씨, 근처 서윤공 묘역 아래서 보아 좌측 내력이고 가지고 온 쇠 꼬챙이로 여러 번 시도 끝에 보람을 찾았다. 역사의 현장은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소속 휴암공파의 열심을 담는다.

 

 

원래의 비석은 상돌 우측에 깨어져 부분 없어진채 방치되고 있다.

 

 

 

 

 

 

묘역 중앙 비탈이 시작되는 곳 드디어 찾았다. 두 분의 노고가 크다.

-----------------

김광욱

 

동의어 회이(晦而), 죽소(竹所), 문정(文貞) 다른 표기 언어 金光煜

 
요약 테이블
시대 조선
출생 1580년(선조 13)
사망 1656년(효종 7)
경력 양서관향사(兩西管餉士), 우참찬
유형 인물
직업 문신
대표작 죽소집
성별
분야 역사/조선시대사
본관 안동(安東)

요약 1580(선조 13)∼1656(효종 7). 조선 후기의 문신.

목차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회이(晦而), 호는 죽소(竹所). 김생해(金生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원효(金元孝)이고, 아버지는 형조참판 김상준(金尙寯)이며, 어머니는 이천우(李天祐)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6년 진사시에 제1인으로 합격하고, 같은 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배속되었다가 검열·대교·봉교를 거쳐, 병조좌랑·정언·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611년(광해군 3) 다시 정언이 되어,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하는 정인홍(鄭仁弘)을 탄핵하였다.

1613년 계축옥사에 아버지와 함께 연루되어 국문을 받았으나 곧 풀려났으며, 1617년 폐모논의를 위한 정청(庭請)에도 참가하지 않아 삭직되자 고양(高陽)에 은거하였다. 인조반정 후 복관되어 고산찰방(高山察訪)·고원군수(高原郡守)·판교(判校)·홍주목사(洪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1633년(인조 11) 양서관향사(兩西管餉士)로 국가재정의 확보에 큰 공을 세웠다. 1641년 황해도관찰사로 나갔고, 경직에 돌아와 병조참의가 되었으며, 1644년 부승지 겸 세자빈객으로 세자를 모시고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도승지·병조참판·호조참판을 거쳐 경기감사로 나가 수원부사 변사기(邊士紀)의 모역사건을 밝혀냈다.

효종 즉위 후 개성유수에 보임되었으며, 동지사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고, 지중추부사 겸 판의금부사를 거쳐 우참찬에 올랐다. 문예와 글씨에 뛰어났으며, 『장릉지장(長陵誌狀)』 을 찬하였다. 저서로는 『죽소집(竹所集)』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동 김씨 > 庶尹公의 후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상용 비명  (0) 2018.06.14
김상준 비명  (0) 2018.06.14
석실묘역 비 피해와 복구  (0) 2018.05.18
석실묘역 사초 진행중  (0) 2018.04.27
석실묘역 정화작업 진행 중  (0) 2017.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