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황산과 그 문우들

[스크랩] 전당시서의 서[全唐詩序序]

추읍산 2009. 8. 7. 09:43
전당시서의 서[全唐詩序序]

옛날에는 서(序)가 다 별책으로 갈라져 행세(行世)하였으니 백 편의 서가 붙은 《고문상서(古文尙書)》 사십오 권이 《한서(漢書)》 예문지에 사십육 권으로 된 것은 서를 따로 하여 말한 것이며, 《역(易)》의 서괘(序卦)도 역시 별책으로 행세하여 십익(十翼)의 하나를 차지했다.
정씨(鄭氏) 강성(康成)도 《시》 소서(小序)는 본시 합쳐져 따로 경 뒤에 붙었다 했으니 서가 따로 행하지 않은 것은 모공(毛公)으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대개 학자가 둘을 따로 읽게 되는 것을 생략하고 보기도 편한 것을 위한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고환(顧歡), 뇌차종(雷次宗), 유현(劉炫), 유헌(劉瓛)이 《시》의 서를 따로 기록하여 혹은 한 권 혹은 두 권으로 되었으며 《서(書)》의 서가 합쳐진 것도 위공전(僞孔傳)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서괘(序卦)는 자주역해(資州易解)에 각기 괘 머리에 매 놓기를 《시》소서가 여러 시 위에 붙어 있는 것과 같이 했다. 이 때문에 주 선생(朱先生)이 고경(古經)을 녹서(錄書)한 것이며 진씨(陳氏)는 회암(晦庵)이 기록한 바가 경과 서로 따로 나누어 놓았다 하였고, 여급공(呂汲公)·왕원숙(王原淑)·조이도(晁以道)·이손암(李巽巖)·여동래(呂東萊)·오인걸(吳仁傑)·세여권(稅與權)이 《주역》 고경(古經)을 편차(編次)하면서 분편(分編)의 그릇됨을 극론하였는데, 십익의 원본이 나타나자 서괘도 예전대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 옛날 경사(經師)의 가법(家法)이 밝혀지지 못하여 고(顧)·뢰(雷) 이하의 여러 복고(復古)의 본이 세상에 행하지 못하였고, 경문도 할렬(割裂)되고 편제(編第)도 바꿔지곤 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이 습상(習尙)에 젖어서 바로 고본이 이와 같다고만 일렀던 것이다.
지금 황산(黃山 김유근(金逌根)의 호)이 전당시의 여러 서를 기록하여 따로 행하게 하였으니 대개 보기 편함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전 사람의 편람(便覽)은 예와 분리되고 황산의 편람은 예와 합치되었으며 유독 전당시만이 아니라 옛날 경사의 가법이 이로 인하여 다시 밝혀졌으니 고·뢰 이하 여러 복고의 본이 다 예전대로 회복하는 것도 반드시 전당시 서가 별행함으로 말미암아 비롯되지 않으리라고는 못할 것이다. 《시》에 이르기를 "옛 훈계를 이에 법받는다." 하였으니 황산을 두고 이른 것이라 하겠다.

[주D-001]십익(十翼) : 공자가 《역(易)》을 찬(撰)한 문(文)인데 구설(舊說)에 상단(上彖)·하단(下彖)·상상(上象)·하상(下象)·상계(上繫)·하계(下繫)·문언(文言)·설괘(說卦)·서괘(序卦)·잡괘(雜卦) 등이다. 한(漢) 전하(田何)의 《역》은 원래 경(經)과 더불어 각자 편(篇)이 되었는데 동래(東萊) 비직(費直)이 비로소 건괘(乾卦)의 단·상·문언을 경에 합쳐 장구(章句)를 갈음하였고, 정강성(鄭康成)에 이르러서는 다시 곤(坤) 문언 및 각 괘의 단·상 제전(諸傳)을 경 뒤에 붙였으며 주자가 《본의(本義)》를 지어 그 구(舊)로 돌아왔다.
[주D-002]고환(顧歡) : 남제(南齊) 염관인(鹽官人)으로 자는 경이(景怡), 일자(一字)는 원평(元平)이며 가세(家世)가 한미하였다. 호학(好學)하여 향중(鄕中)에 학사(學舍)가 있으나 가난하여 업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벽(舍壁) 뒤에서 의청(倚聽)하여 유망(遺忘)이 없었다. 일찍이 삼명론(三名論)을 지어 심히 공(工)하고 또 왕필(王弼)의 《역(易)》 이계(二繫)를 주석하여 학자(學者)가 전하였음.
[주D-003]뇌차종(雷次宗) : 남조(南朝) 송(宋) 남창인(南昌人)으로 자는 중륜(仲倫)인데 젊어서 여산(廬山)에 들어가 사문(沙門) 석(釋) 혜원(慧遠)을 섬겼으며 독지 호학(篤志好學)하여 더욱 삼례(三禮)·모시(毛詩)에 밝았음. 원가(元嘉) 중에 도하(都下)에 징지(徵至)하여 계롱산(鷄籠山)에 관(館)을 열어 놓고 학도를 모아 교수하였음.
[주D-004]유현(劉炫) : 수(隋) 경성인(景城人)으로 자는 광백(光伯)인데 젊어서부터 총민(聰敏)으로 이름이 났음. 일찍이 제유(諸儒)와 더불어 오례(五禮)를 수정(修定)하였으며, 저술로는 《논어》·《효경》·《춘추》·《상서》·《모시》등의 술의(述義)와 《춘추공매(春秋攻昧)》·《오경정명(五經正名)》·《주시서(注詩序)》·《산술(算術)》등 서가 있음.
[주D-005]유헌(劉瓛) : 남제(南齊) 상인(相人)으로 자는 자규(子珪), 시(諡)는 정간선생(貞簡先生)이다. 성(性)이 지효(至孝)하여 팽성군 승(彭城郡丞)을 제수하였으며, 오경(五經)에 박통(博通)하고 학도를 모아 교수하여 일세(一世)의 대유(大儒)라 일컬어졌으며 저술로는 《주역의소(周易義疏)》·《주역유씨의소(周易劉氏義疏)》·《건곤의(乾坤義)》·《계사의소(繫辭義疏)》·《효경유씨설(孝經劉氏說)》이 있음.
[주D-006]위공전(僞孔傳) : 한(漢) 공안국(孔安國)이 조명(詔命)을 받들어 《고문상서전(故文尙書傳)》을 만들었는데 무고(誣蠱)의 일이 일어나서 미처 들이지 못하고 죽었다. 진(晉)의 때에 이르러 그 서(書)가 다시 나왔는데 후유(後儒)는 자못 의심하여 진인(晉人)이 위조한 것이라고 하였다. 공영달소(孔穎達疏)가 곧 그 본(本)이다.
출처 : ▒ 한 산 草 堂 ▒
글쓴이 : 천하한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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