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고한 기독교
'기독(基督)'은 고대 헬라어 '크리스트'의 한자 표기입니다. '그리스도'는 '크리스트'의 한국말 음역이고요. '기독'보다는 '그리스도'가 훨씬 원어 발음에 가깝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표음문자로 칭송받는 한글 덕분입니다. 그럼 어째서 한국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기독'이라고 쓰고 읽는 걸까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어떤 한국말 성경 역본에도 '기독'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경에도 없는 말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은 중국말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중국말 성경에서는 '크리스트'를 쓸 자리에 '基督'을 씁니다. 물론 중국 사람들은 그걸 '기독'이라고 읽지 않고 '지뚜(ji3-du3)'라고 읽습니다. 머시라고요? '크리스트'가 '지뚜'?
그게 중국글의 한계입니다. '그리스도'는 고유명사이므로 뜻을 번역하기보다는 소리를 번역해야 옳은데, 불행히도 중국 글은 외국말 소리번역에 아주 젬병입니다. 한자가 표의문자이기 때문이지요. 중국 사람도 '말'로는 '크리스트'라고 발음할 수야 있겠지만 이걸 ‘글’로 쓰려면 난감한 거지요.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제한적인 한자를 가지고도 '크리스트'를 가깝게 음역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게 바로 '지뚜(基督)'입니다. 그런데 '지뚜'는 '크리스트'의 온전한 번역말이 아닙니다. 원래는 '基利斯督'이라고 쓰고 '지리스뚜(ji3-li4-su3-du3)'라고 읽었지요. 그게 중국글로 표기할 수 있는 '크리스트'에 가장 가까운 소리입니다. 눈물겨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라는 훌륭한 음역어를 가졌던 조선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쓰는 대신 중국의 '基利斯督'을 들여다가 '기리사독'으로 읽었습니다. '지리스뚜'만 해도 발음이 어색한데 '기리사독'이라고 했으니 얼마나 우습습니까?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중국은 중화(中華)이고 세상의 중심이었으니까요. 소중화(小中華)인 조선으로서는 중국을 따라 갈 수 밖에요.
중국 사람들이 '지리스뚜(基利斯督)'가 너무 길다며 첫 자와 끝 자만 따서 基督이라고 쓰고 '지뚜'라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별 수 있었겠습니까? 따라야지요. 그게 바로 한국 사람들이 '그리스도'라는 좋은 음역어를 두고도 '기독(基督)'이라는 국적도 애매모호하고 우습기 짝이 없는 말을 쓰고 있는 사연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리스도'는 호에 해당합니다. 이름은 '예수'지요. 중국 사람들은 지금도 '예수'를 耶蘇라고 씁니다만, 그걸 중국 발음으로 읽으면 '예수(ye3 su3)'가 됩니다. 중국말 치고는 훌륭한 음역이지요. 그런데 조선 사람들은 耶蘇를 들여다가 '야소'라고 읽었습니다. 1백년 전 문헌을 보면 거의 다 '야소'라고 돼 있습니다. 한글 성경이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시작하고 나서야 한국말 음차어로 '예수'라고 바로잡았지요.
그런데 야소(耶蘇)는 '예수'로 고쳐 쓰면서도 어째서 기독(基督)은 아직 그대로 쓰고 있는 걸까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생각 없이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의 이름조차 남의 나라 문자에 기대서 생각 없이 쓰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신앙 생활인들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요? 중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독’이라는 이름부터 바로 잡아야 되는 것 아닌가요?
ⓒ 평미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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