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역사관> 소장. (도록, p138)
삼당선생집(三塘先生集)
삼당 김영(金瑛 1475~1528)의 문집. 필사본 . 2권 1책. 김영은 1495년(연산군 1년)에 사마 양시에, 1506년(중종 1년)에는 문과에 합격했고, 좌승지를 지냈다. 김영은 서울의 청풍계(靑楓溪)에, 그의 형 김번은 장의동(壯義洞)에 각각 터전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이 책은 후손 김병승(金炳升)이 김영의 시문(詩文)을 모으고 부록을 붙여 편집하여 만들었다. 권두에는 1830년에 송치규(宋穉규, 1759~1838)와 김영의 9대손인 김이양(金履陽 , 1755~1845)이 쓴 서문이 있다. 권1은 시(詩), 소(疏), 묘갈명, 행장, 권2는 부록으로 연보, 묘갈명, 묘갈음기(墓碣陰記), 행장, 권2는 부록으로 연보, 묘갈명, 묘갈음기(墓碣陰記),행장,「권충재벌교유록(權冲齋橃交遊錄),」「부록중제현( 附錄中諸賢」,「김허백당양진사우록(金虛白堂楊震師友錄)」,「권초간문해대동운옥(權草澗?文海大東韻玉)」이 있고 마지막으로 김규종(金奎宗)이 쓴 「후지(後識)」가 있다. 이어서 「창균선생유고(蒼筠先生)」가 부가되어 있는데 , 이것은 김영의 손자인 김기보(金箕報), 1531~1588, 字 文卿, 號 蒼筠 혹은 金山)의 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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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추읍산)가 쓰는 글
김영(金瑛)은 김계권(金係權 ?~ 1458)의 손자이며 김영수(金永銖)의 장남이다. 김번(金璠)은 그의 동생인데 잘못 기록되었다.
청풍계는 김영(金瑛, 1475-미상)이 터전을 마련한 곳인데 이후 그의 동생인 김번의 증손인 김상용(金尙容 1561~1637)과 그 후손들에게 이어져 서울의 내력을 상징하는 유서 깊은 세거지(世居地)가 되었다. 김영은 누구인가? 이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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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金瑛 ]
1475(성종 6)∼1528(중종 2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영지(英之), 호는 삼당(三塘). 할아버지는 계권(係權)이고, 아버지는 장령 영수(英銖)이며, 어머니는 김박(金博)의 딸이다.
1506년(연산군 12)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로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고, 이듬해에는 대교(待敎)에 올라 김흠조(金欽祖)·정충량(鄭忠樑) 등과 더불어 사신의 정도를 내세우며 사초문제(史草問題)로 빚어졌던 무오사화로 해를 입은 자들의 억울한 죄를 회복시켜 줄 것을 상소하였다.
그 뒤 수찬(修撰)·정언(正言)·교리(校理)·장령(掌令) 등 청요직을 지냈으며, 1518년 (중종 13)에는 경상도재상경차관(慶尙道災傷敬差官)이 되었다가 곧 김제군수로 외직에 나갔다.
1522년에는 다시 장령이 되었으며, 이어 동부승지를 거쳐 1527년에는 강원도관찰사에 보임되었으나 대간의 탄핵으로 곧 개체되었다. 조광조 등 중종 때의 사림파와 언로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는 등 정치적 성격을 달리한 인물이었다. 문집으로 ≪삼당집≫이 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참고문헌≫ 大東韻府群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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