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역사관> 소장. (도록, p136)
농암집(農巖集)
농암(農巖)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문집. 활자본. 김창협의 농암집은 원집(原集)과 속집(續集), 별집(別集)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의 책은 그 중 원집이다. 원집은 원래 36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 기증 자료에는 잔권(殘券) 몇 권만 포함되어 있다. 원집에는 권두에 김창흡(金昌翕)이 지은 서문과 권1~36의 총목이 있고 이어서 김창협이 지은 부(賦)와 시(詩), 소차(疏箚), 계(啓), 의(議), 강의(講義), 편지, 서(序), 기(記), 제발(題跋), 잡저(雜著), 묘지명(墓誌銘), 신도비명(神道碑銘), 제문(祭文), 애사(哀辭), 잡지(雜識)등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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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추읍산)가 쓰는 글
필자의 11대조 문곡 김수항(文谷 金壽恒, 1629~1689 |자: 구지久之 |시호 : 문충文忠)의 아들은 여섯 분인데 김창협은 3남으로 태어났다. 김수항 三 兄弟는 삼수三 壽로, 김창협의 六 兄弟는 육창六 昌으로 불리고 있다. 숙종과 영조 대의 인물인 이분들은 그때(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의 정치, 사회, 문화계에 우뚝 서신 분들입니다.
그러면 먼저 삼수 육창을 알아보자! 이를 필자의 블로그로 안내합니다.
보기 : http://blog.daum.net/0113508344/4719150
농암 김창협은 석실서원에 후진양성에 진력하신 분이다. 그러면 조선후기 서울, 경기 지역 학문연구의 중심지이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한 석실서원은 어떤 곳인가? 이를 알아보자. 보기 1, : http://blog.daum.net/0113508344/4719151
보기 2, : http://cafe.daum.net/dugso/2nnt/29
김창협은 누구인가? 좀 더 알아보자. 이를 한국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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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협[ 金昌協 ]
1651(효종 2)∼1708(숙종 34).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 또는 삼주(三洲). 경기도 과천 출신. 좌의정 상헌(尙憲)의 증손자, 아버지는 영의정 수항(壽恒), 어머니는 안정나씨(安定羅氏)로 해주목사 성두(星斗)의 딸이다. 영의정을 지낸 창집(昌集)의 아우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전시장원으로 급제해 전적에 출사한 뒤, 병조좌랑·사헌부지평·부교리 등을 거쳐 교리·이조좌랑·함경북도병마평사(咸鏡北道兵馬評事)·이조정랑·집의·동부승지·대사성·병조참지(兵曹參知)·예조참의·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송시열(宋時烈)의 ≪주자대전차의 朱子大全箚疑≫를 명에 의해 교정하였다.
청풍부사로 있을 때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되자, 사직하고 영평(永平 : 경기도 포천군)에 은거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 후 아버지가 신원됨에 따라, 호조참의·예조참판·홍문관제학·이조참판·대제학·예조판서·세자우부빈객·지돈녕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는 평소에 부드럽고 화기가 가득하지만 의리를 분별해 밝힐 때는 목소리를 높여 기개와 절조를 표현해 그의 말을 끊을 수 없었지만, 선입견이 없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옳으면 곧 주장한 바를 양보하였다. 또한 후학을 순순히 교화해 모두 심복하게 하였다.
문장은 단아하고 순수해 구양수(歐陽修)의 정수를 얻고, 그의 시는 두보(杜甫)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고상한 시풍을 이루었다.
학문은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설을 절충하였다. “사단(四端)은 선(善)뿐이고 칠정(七情)은 선과 악을 겸했으니, 사단은 오로지 이(理)만 뜻하고 칠정은 기(氣)를 겸한 것”이라는 이이의 설에 대해, 다만 기까지 겸하였다는 한 구절에서 차이를 보인다.
칠정이 비록 이와 기를 겸했더라도 그 선한 것은 기가 능히 이를 따랐음이요, 그 선하지 않은 것은 기가 능히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이니, 처음부터 기가 주된 것이라고 해 이황의 기발이승설(氣發理乘說)을 지지하였다.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에서도 그는 기의 맑은 것은 모두 선하지만 선한 정(情)이 모두 맑은 기에서 나왔다 함은 옳지 않으며, 정의 악한 것이 탁(濁)한 기에서 나왔지만 탁한 기가 발(發)해 된 정이 모두 악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도한 그는 인심의 동(動)함에 이가 비록 기에 탔어도 기가 또한 이의 명령을 듣는 것이다. 만약, 선악의 정을 모두 기의 청탁에 돌린다면 이의 실체와 성(性)의 선함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성악론변 性惡論辨〉에서 그는 “사람의 성은 본래 선한 것이나 순경(荀卿)이 인성을 악하다고 말한 것은 기요, 성이 아니다. 대체로, 사람이 세상에 날 때 기는 질(質)이 되고 이는 성이 되는 것인데, 이에는 선만 있고 악이 없으나 기에는 선한 것도 있고 선하지 못한 것도 있으니, 사람에게 선하지 못함이 있음은 기의 소위이다.”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이기설에서 대체로 이이보다는 이황의 설에 가까우며 호론(湖論)을 지지하였다. 특히, 문장에 능하며 글씨도 잘 써서 문정공이단상비(文貞公李端相碑)·감사이만웅비(監司李萬雄碑)·김숭겸표(金崇謙表)·김명원신도비전액(金命元神道碑篆額) 등이 있다.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 영암의 녹동서원(鹿洞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농암집≫·≪주자대전차의문목 朱子大全箚疑問目≫·≪논어상설 論語詳說≫·≪오자수언 五子粹言≫·≪이가시선 二家詩選≫ 등이 있고, ≪강도충렬록 江都忠烈錄≫·≪문곡연보 文谷年譜≫ 등을 편집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農巖集(金昌協)
≪참고문헌≫ 朝鮮儒學史(玄相允, 民衆書館, 1954)
백과사전 카테고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인물 > 학자
출처 :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35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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