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역사관> 소장. 도록, p139
백육애음(白六哀吟)
김신겸(金信謙, 1693~1738)의 시집. 필사본. 김신겸의 자는 존보(存甫). 호는 증소(橧巢)다. 그는 김창업(金昌業)의 아들이며 숙부인 김창흡(金昌翕)을 사사하였다. 1721년(경종 1)진사시에 합격했으나, 큰아버지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이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 신임사화에 거제도로 유배될 때 연루되어 함께 유배되었다. 1725년년(영조 1)에 풀려나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강원도 영월에 산중에 들어가 산수를 즐기면서 후진교육에 힘썼다. 문집으로 증소집이 있다. 『백음애음』은『증소집』에도 실려 있으며, 사화를 입은 후에 쓴 것으로 친족과 사우(師友) 106명의 행적을 칠언(七言)으로 읊은 서사시 형태의 연시(聯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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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추읍산)가 쓰는 글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할아버지 김수항이 사사되고, 이로부터 33년 후인 1721년과 1722년(경종 2)에 일어난 신임사화로 큰아버지 김창집의 3대(김창집, 김제겸, 김성행)가 죽음에 이르는 화를 입었다. 이 4대에 걸쳐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충성을 다한 이 슬픈 가문의 역사는 후에 모두 복권되고 조선조 유일의 일묘사충(一廟四忠, 필자가 쓴 글, 일묘사충, 기사환국, 신임사화에서 소개하였다.)으로 추앙된다. 김신겸은 큰아버지 김창집의 3대가 희생될 때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1725년(영조 1)에 풀려났다고 한다. 그러면 김신겸이 유배 원인이 된 신임사화를 공부하자. 이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알아보자. 보기 :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45048&v=44
김신겸과 백육애음(白六哀吟)을 좀 더 알아보자! 아랫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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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겸[ 金信謙 ]
1693(숙종 19)∼1738(영조 14).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존보(尊甫), 호는 증소(橧巢). 아버지는 진사 창업(昌業)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익풍군(益豐君) 속(涑)의 딸이다. 숙부인 김창흡(金昌翕)을 사사하였다.
1721년(경종 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큰아버지인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이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 신임사화에 거제도로 유배될 때 연루되어 함께 유배되었다. 1725년(영조 1)에 풀려나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강원도 영월의 산중에 들어가 산수를 즐기면서 후진 교육에 힘썼다.
그는 당시의 석학인 민우수(閔遇洙)·유숙기(兪肅基)·이봉상(李鳳祥) 등과 더불어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명덕설(明德說) 등을 강론하였다. 그는 시문에 뛰어나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백육애음 百六哀吟〉이라는 사우(師友)들 106명의 행적을 읊은 대서사시를 남겼다.
그는 전국 각지의 명승고적·명산·바다·도서 등지를 두루 구경하고 사적·풍속·지리·산물 등을 소개한 기행문을 많이 남겼다. 이조판서 겸 좨주(祭酒)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저서로는 ≪증소집≫ 10권 5책이 있다.
≪참고문헌≫ 橧巢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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