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편지

김종규(金宗圭)가 김정규(金定圭)에게 보낸 편지

추읍산 2011. 4. 7. 18:46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역사관> 소장          도록 p118

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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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 P 340

64. 김종규(金宗圭)가 김정규(金定圭)에게 보낸 편지

(1887.6.15.)


叔父主喪變 痛哭何達 近添何症候 遽當斯境 今日奄至成服 初終凡節 果無未盡者耶 積年焦慮之餘 當此巨創 氣候必多毁傷 叔母主諸節不至大損 學官兄弟亦如何耶 區區伏慕 不任悲慮之私 從弟宜卽進哭 而親節自月初屢患癨氣 方在凜綴藥餌扶將之節 無以暫離 不得趁弔奔慰 反不爲門生傔從匍匐之義 情禮蔑矣 道理壞矣 雖緣事勢 尤切悲痛 襄禮當從禮月 而今年山運吉凶如何耶 鄕中也故事多窘塞 而看檢護喪之節 屬之有人耶 幷切伏鬱伏鬱 餘伏祝節哀順變 無至傷孝之地 不備達

丁亥六月十五日 從弟 宗圭 上書


 숙부(叔父)님께서 돌아가신 것을 통곡하며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1) 최근에 무슨 증세가 더해지셨길래 갑자기 이런 지경을 당하셨습니까? 오늘 성복(成服)하게 되었는데 모든 절차에 미진함은 없었습니까? 여러 해 동안 안타깝게 걱정하다가 이제 이런 큰 일을 당했으니 틀림없이 건강에 손상이 많으실 것입니다. 숙모님도 큰 탈은 없으시며, 학관(學官) 형제는 어떻습니까? 그립고 또 그지없이 슬프고 걱정됩니다. 저는 마땅히 곧바로 나아가 곡해야 했으나 부모님이 월초부터 여러 차례 곽란(癨亂)을 앓아 지금 병들고 늙은 몸을 약으로 부지하고 계셔서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어 달려가서 조문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긴 해도 같은 집안의 아우로서 옆에서 시중들며 힘써 일하는 의리를 행하지 못했으니, 정성과 예의가 없는 것이요, 도리가 무너진 것입니다. 사정상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나 슬픔과 애통함이 간절합니다. 장례는 예(禮)에 정해진 달에 치러야 할 것이나 올해의 산운(山運)의 길흉이 어떻습니까? 시골은 여러 가지로 궁색한 면이 많을 텐데 일을 돌보고 상을 치르는 것을 맡길 만한 사람은 있습니까? 매우 걱정입니다. 나머지는 애통함을 절제하시어 몸을 보전하여 효도를 그르치지 않도록 하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1887년 6월 15일 종제(從弟) 종규(宗圭) 올림



1) 편지를 받은 김정규(金定圭)의 아버지 김병주(金炳㴤)는 1887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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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김종규와 김조균은 같은 분으로 김종규가 개명된 이름이므로 앞장에 쓴 것을 순서에 의하여 바로잡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저의 고조할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이를 슬퍼하시며 저의 증조할아버지에게 쓴 편지입니다. 고조 김병주는 1887년 6월 12일 여강(驪江)가인 경기도 여주군(당시) 개군산면 앙덕리에서 돌아가셨는데 부음 소식을 들으시고 그 3일 후, 슬픈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때 글 쓴 이의 부친인 약산 김병덕(約山 金炳德, 1825년-1892년) 할아버지와 그 할머님도 병환 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