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贊成公(達行) 가문

유관(김흥근) 할아버지께서 잠들어 계신 곳

추읍산 2012. 10. 25. 07:51

10월 13일 보현당 덕분에 그간 찾지 못했던 휘 흥근 묘소도 참배할 수 있었다. 내촌면 외가  풍산홍씨 묘역을 탐방한 일행은 외사촌 형님의 안내를 받았고 맛있게 점심을 대접받고 일동면 기산리 소야골로 향했다.

 

조선조 말(철종 때) 하옥(김좌근) 할아버지와 함께 조정(朝廷) 최일선에 서시고 세도정치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함께 덮어쓰셨습니다. 그러나 곧은 삶으로 만년을 장식하시고 모두의 사표로써 청백리(淸白吏)의 아들[約山 金炳德으로 읽어볼 곳 http://koreandb.nate.com/history/people/detail?sn=9981]을 길러 내셨습니다. 

 

저는 황산 유고에서 <완백(完伯)인 종제(從弟)가 백우선(白羽扇)을 보내주어 시를..> 를 읽었습니다. 할아버지는 1835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시고 여름 더위가 오기 전 그곳 특산품인 백우선(부채의 일종)을 황산(김유근) 할아버지께 보내시어 더위를 쫓아내도록 도우시고 업무에 효율성을 높여 주셨습니다. 또한, 순원왕후께서 할아버지께 보낸 서찰[이승희, 순원왕후의 한글편지(푸른역사, 2010)]을 읽으며 그때를 생각합니다.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옛 영화는 어디로 갔는지요? 나라의 발전을 후퇴시켰다는 저희 문중(안동김씨)을 향한 질타 속에는 보태지고 변질한 내용까지 더하고 있음을 봅니다. 모두가 업보이고 역사의 수레바퀴인 것을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심히 우려됩니다. 제가 할 일은 있는 그대로 알려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에 진력하겠습니다. 또한, 얻어지는 교훈은 두고두고 모두에게 다가가는 지침이 되었으면 합니다. 

 

타고난 약한 마음은 상처투성이로 아물지도 않았습니다. 후회스러운 여정이 필름처럼 스치고 짓누르고 있습니다. 꿋꿋이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와 담대함을 주십시오. 남은 삶! 지난날 거울삼아 후대에서 나라와 가문을 위해 바른길을 걸었다고 기억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모자라는 부분은 어려움을 헤쳐가신 조상님의 지혜로 채우겠습니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후손 모두에게 내린 당부이고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할아버지 선영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으며 이문안 대신이라고 말씀하신 어머님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노가재(金昌業 1658~1721) 후손으로 입적되셨음에도 생가의 맥을 이어가고자 종손 할 일을 대행하고 계시는 진동 형님! 그 높으신 숭조정신을 존경합니다. 소야골 과수원을 돌고 돌아 높다란 산 위에 자리한 묘소는 비석이 군데군데 파손되어 있어 마음 아팠습니다. 아마도 6, 25의 전흔일 것입니다. 오늘을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조상님을 바로 모심인가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0세 金達行(1706~1738)

 

21세

 

                     慶                    

 1738~1816

 

履中

 

1736~1793

 履基 1724~1790

 

22세

                      明淳                    生父  履基

1759~1810

 

       祖淳         1765~1832

 

 龍淳 1753~1823

 

23세

     興根 1796~1870

 應根 1793∼1863 

 

弘根 1788~1842

 

左根 1797~1869

 

元根

 

1786~1832

 

逌根

 

生父 祖淳

 

1785~1840 

 

24세

 

炳德

 

1825~1892

 

炳始 1832~1898

 

炳溎 1824~1855

 

 

 

炳冀

生父 泳根 

1818~1875

 

 

 

炳地 

 

1830~1888

 

 

 

   炳㴤 

生父 弘根 

1827~1887

 

 

 

25세

 

宗圭 1862~1922

 

容圭 1864~1902

 

性圭 1846~1896

 

用圭 1867~1927

 

 錫圭

 

生父 炳洙 

 

1864~1905

 

 定圭 1862~1903

 

필자의 曾祖

붉은 테두리는 필자의 직계이고 유관 휘 흥근은 검정 테두리로 표시하였다.

 

 

 

 

6, 25의 전흔일 것이다. 옆면과 후면은 알아보지 못하는 곳도 있는데 필자가 양평군에 기증한 유물중에는 전문이 실려있는 글이 있어 다행이다.

 

일동면 기산리 소야골! 그곳에서 유일하게 남은 유관(김흥근) 가문의 현장이다. 아드님이시고 청백리로 이름이 높은 약산 할아버지(김병덕)와 이하 묘소를 참배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을 뒤로하고 하산하는데 가평의 영흥부원군 묘역을 안내하겠다는 보현당의 열의로 오후 늦게 찾았는데 더 쓰고 싶지 않네요. 이어 일행은 운길산 역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고 각자 집으로 향하였다. 거듭 보현당 정용원 씨에 감사드립니다.

 

더보기: 유관(游觀) 김흥근 조상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