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贊成公(達行) 가문

설날 성묘

추읍산 2013. 2. 11. 09:43

어제 아침 7시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 가족은 성묘길에 나섰다. 눈 덮인 산하와 한강을 끼고 가는 길은 미리 고향을 찾았음인지 별 막힘이 없었고 1시간여를 걸려 도착할 수 있었다. 근래에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왔다. 성묘길 묘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발목까지 빠지는 산길을 올랐다.

 

향곡(개군면 향리 아랫상골) 선영의 정점이신 8대조 묘역으로 폰 사진(이하 같음)이다.

 

8대조 묘표의 전면이다. 중국(宋) 대가이신 소식(蘇軾으로 호: 蘇東坡)의 글씨로 집(集: 모은 글)이다.

 

8대조(휘 달행) 비석 옆면으로 7대조 휘 이기(履基), 그리고 계전리의 휘 이중(履中)의 묘표도 같다. 앞 큰 글씨가 宋 나라의 蘇軾[1037~1101 | 호: 東坡居士, 흔히 소동파(蘇東坡)라 부른다.], 뒤와 옆면 작은 글씨는 한호(韓護 1543년~1605 | 호: 石峯)가 쓴 글씨로 모두 集(모은 글)이다.

 

이어 차례대로 성묘하였고 이어 이웃 또 한 분의 7대조 이중(履中, 8대조의 둘째 아들로 영안 부원군 김조순의 부친)묘소를 찾았다. 이어 인천시 계양중학교 뒷산에 있는 고조(휘 炳 삼수변+柱)의 생가 묘역을 찾았다. 가다 서다 차들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0세 ○金達行(1706~1738)

21세

                  ○慶                    

 1738~1816

○履中

1736~1793

 履基 1724~1790

22세

                     ○明淳                    生父  履基

1759~1810

       祖淳         1765~1832

 龍淳 1753~1823

23세

興根 1796~1870

 應根

1793∼1863 

弘根 1788~1842

左根 1797~1869

元根

1786~1832

유逌根

生父 祖淳

1785~1840 

24세

炳德

1825~1892

炳始 1832~1898

○炳溎 1824~1855

 

炳冀

生父 泳根 

1818~1875

 

炳地  1830~1888

 

   병炳㴤 

生父 弘根 

1827~1887

 

25세

宗圭 1862~1922

容圭 1864~1902

○性圭 1846~1896

用圭 1867~1927

 錫圭

生父 炳洙 

1864~1905

 ○定圭 1862~1903

필자의 曾祖


안동김씨 문정공파 김달행 가문 계통도로 은 테두리필자의 직계로 설날 성묘한 곳은 ○로 표시하였다. 도표에는 없으나 직계 증조(휘 定圭) 이하인 조부(휘 翼鎭), 부친(휘 朝漢), 둘째 숙부(휘 天漢) 묘소도 참배하였다.

 

인천시 계양역 근처 계양중학교와 붙어 있는 야트막한 산에 묘셔진 필자의 혈통상(고조 김병주의 생가) 조상님 묘역이다. 굴현동에 있었는데 근래 개발로 말미암아 이곳으로 가문묘역을 조성하였다. 발목까지 빠지는 산 비탈길을 올랐다.

 

묵념하는 큰아들 정현이다. 맨 위가 휘 이경(履慶)으로 8대조 휘 달행의 셋째 아들이다. 왜 멀리 인천에 자리 잡으셨을까? 비석은 없고 상돌에 휘 이경, 휘 명순(明淳)만이 음각되어 있다. 이어 순서대로 위에서 아래 좌측에서 우측일 것이다. 좌측 아래가 6대조 휘 명순이고 5대조 휘 홍근은 가 뵐 수 없는 개성에 계신다. 그 우측이 고조의 친형님이신 휘 병계로 추정한다. 순서에 의해 이경~명순~홍근(개성에 계심)~ 병계~ 성규~ 국진(개성에 계심)~직한(稷漢)~기동(사진에서는 없고 묘역 좌측에 별도로 모셔진 분으로 추정) 이시다.

 

이어 둘째 누님댁을 찾았는데 차들이 막혀 시간이 지체하였다. 오후 3시경 찾았고 내친김에 근래 아들을 잃어 홀로 계시는 둘째 작은어머님을 근처 만수동에서 뵙고 어둠을 뚫고 귀갓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