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2월 첫날, 보현당과 차정일 씨 12시 30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회동했다. 방대한 조선왕조의 숨결 속 효명세자 계셔 찡하다. 나와 경복궁을 가로질러 삼청동으로 향했다. 이어 점심 옥호정터와 백련사터 앞, 잠시 머물고 돌아 북악산 줄기 백련봉(白蓮峯)아래 지진두(백련사 후원)로 향했다. 영월암(影月巖)과 월암동(月巖洞) 모두 바위와 관련된 이름이고 이기설(李基卨 1556 - 1622)이 은거(隱居)하였는데 달라진 세상에서 그 옛날을 생각한다.
소개한 분 테니스장 동북쪽이라 하여 그러나 없다. 산속을 헤며기 한참, 산책하는 분 보이고 그 옛날 이곳(삼청공원)은 황산 할아버지(김유근 1785-1840) 걸으셨을 그때를 그린다. 되돌아 나오는데 아래 테니스장 지나 언덕 위 바위 있어 아 ~ 이곳이다. 가려, 두 곳 테니스장 이웃함인데 등잔 밑이 어두운가? 끼고 올라 두 곳의 각자 담았다. 앞에는 군 병원이 보이고 수려한 삼청공원 맑은 공기 가득하고 오후 햇살을 머금었다.
황산 할아버지(휘 유근), 200년 전 이곳(국군 서울지구병원)에 살 집을 마련하시고 백련사라 명했다. 그리고 그때 이곳은 빈객들이 많아 낮을 밤으로 이어 풍류가 넓고 멀리 전하였다고 한다. 黃山門客이라는 말도 이에서 비롯하였을 것이다. 네 분(자하, 황산, 추사, 이재)의 수많은 그림과 글씨들이 이때 쏟아졌을 것이다.
그러면 당시 북악산 줄기 백련봉 아래(삼청공원)를 걸으셨을 황산의 흔적을 들어보자.
『뜻은 원대하나 일이 없어 한가한 사람 몇몇과 매일 경전과 역사를 연구하며 옛 시대와 지금 시대를 비교하여 토론하고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논의하며 본성(本性)과 천명(天命)의 근원을 탐구하였다. 그러다가 지칠 때 거문고를 타거나 바둑과 장기를 두면 그 즐거움을 배가 되고, 이따금 지팡이 짚고 나막신 신고 잡초 우거진 길을 산보하고, 끊어진 다리에 걸터앉거나 작은 언덕을 넘고 절벽 아래 계곡을 굽어보면서 물끄러미 먼 곳을 바라보고, 이리저리 한가하게 거닐곤 하였다. 』
- 황산유고의 閒居隨筆(한거수필, 한가롭게 지내면서 붓 가는 대로 쓰다) 중에서 옮김
흔적을 찾아 쓰는 글 동창이 밝아옵니다.
삼청공원(A)은 옥호정터와 더불어 황산(金逌根 1785-1840)의 터전이다. 앞 흰 건물(삼청동 25)은 국군 서울지구병원으로 200년 전 공께서 지은 백련사가 있었고 고조(金炳㴤 1827~1887) 때에 훈동으로 옮기셨다. 위 사진에서 도로를 사이로 좌우에 테니스장이 각각있다.좌측 테니스장 도로접 절벽바위에는 앞서 광해군때 이기설이 이곳에 은거하며 새긴 각자가 있다.
삼청 테니스장에서 바라본 국군서울지구 병원(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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