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이다. 붉게 물든 철쭉이 곳곳 수놓는가 했는데 화무십일홍이다. 우리 또한, 이와 무엇이 다르랴! 여름으로 치달아 초여름이 대지를 달군다. 곳곳 푸름은 더해가고 곧 장미꽃 피어오르겠지요. 빗줄기 쏟아졌으면 하는 바람인데 운무 낀 도시 하늘, 차소리 요란하니 5월의 첫 월요일 삶의 현장은 치열하다.
어제는 일요일이고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석실 선영을 다녀왔다. 파조이신 서윤공(諱 번) 이하 조상님께서 잠들어 계신 곳이고 풍수가들이 즐겨 찾는 요람이 된 지 오래다. 묘역 성역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지금은 앞 연못에 축대를 쌓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을 계획하고 진행되고 있다.
석실서원 복원은 잊쳐져가고 처한 현실이 아프니 앞 흐르는 물(渼湖), 어찌 마주하리오?
13대조이신 청음(諱 尙憲)께서는 병자호란의 국란에서 1840년 11월 청의 심양으로 압송되셨고 중국을 차지한 청에 의해 1645년(인조 23, 선생 76세) 풀리어 소현 세자(昭顯世子) 일행을 수행하여 돌아오셨다. 6년 동안의 구금생활에서 꺽기지 않는 조선의 기개를 보여주셨으니 청조차 경외하여 이르기를 “김상헌 감히 그 이름을 부를 수 없다” 하였다.
남은 삶 온 힘을 다해 등대지기 되셨는데 83세를 일기로 1652년(효종 3) 6월에 병세가 위독해졌고 어의의 내방을 받았으나 25일 석실 정침에서 돌아가셨다고 청음연보는 기록하고 있다. 정침(正寢)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1) 제사를 지내는 몸채의 방.
(2) 주로 일을 보는 곳으로 쓰는 몸채의 방
이라고 daum 한국어사전은 안내하고 있다.
그 정침 자리를 찾아 나선 오후, 빛 쏟아지고 있었다.
석실 입구 4거리로 오른쪽이다.
묘도 중앙으로 옥병에 술이 담긴 형국 그 힘이 모아지는 병목 부분에 모셔진 서윤공(휘 번) 16대조 할아버지 좌우로 후손의 묘역이 병풍처럼 호위하고 있으니 가히 명당자리가 아닌가. 앞 재사(齋舍)가 청음(휘 상헌)의 정침일 것이고 현 안동김씨 서윤공파 종가와 일치한다.
석실 정침으로 추정되는 서윤공 종가댁이다. 옛 집은 간곳없고 주춧돌, 뜰돌 몇 개, 기왓장 조금과 옛 우물이 남아있어 그때를 생각하게 한다. 청음 할아버지께서 만년의 터전이시고 운명하신 곳인데 옛집은 볼 수 없고 흔적만이 남았다. 지금은 서윤공파 종손 성동 씨 부자가 거처하고 있다.
청음(휘 상헌) 할아버지께서도 이 우물물을 드셨을 것이다.
마른 우물은 현대화가 가져온 아품이다. 그때는 돌로 쌓은 옹달샘 일 터인데 둥근 콘크리트관으로 바뀌었고 이마저도 말라 옛정서는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집집이 상수도로 앞으로는 어찌 전개될까?
작은 돌절구에서 세월의 무상함이 더한다.
종가댁 담 밖이고 이웃한 집인데 지붕을 바라보니 조선 기와가 용마루를 덮고 있다. 이곳도 석실정침의 한 곳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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