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직계조상님

청음 할아버지

추읍산 2015. 10. 23. 09:37

청음 할아버지

 

1)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정신

2) 역경 속에서도 대의와 원칙을 철저히 수행함

3) 죽음이 예견되는 상항에서도 굴하지 않는 당당함

4) 청백리의 표상으로 대의(大義)와 원칙(原則) 이라는 명료한 이념을 철저히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 이념은,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정계와 사상계의 주류를 형성했다

 

 

전란 속에 꽃핀 이상주의자 김상헌(동아닷컴 신동아 1996,2)

발췌한 곳 : 아래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9702/nd_446.html 

 

--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 말동 하여 라』이다. 고국 산천의 대표적 존재인 북한산과 한강에 이별의 인사를 하며 자신이 고국을 떠나고 싶지 않은 심정을 토로하였다. 더욱 이 시절이 수상하다는 말로 당시 시국의 어려움을 표현하고 결국 자신의 귀국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뜻을 담았다.

 

의리의 원칙주의자

 

-- 김상헌은 사람됨이 정직하고 엄격하여 우스갯소리를 잘하던 그의 아버지조차 친구들과 놀다가 아들이 밖에서 돌아오는 기척을 느끼면 손을 저어 그치며 『우리집 어사또 오신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할 정도다.

 

-- 의주를 거쳐 심양에 가서 청나라 형부관원의 심문에도 여전히 소신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므로 그들도 『참으로 어려운 노인이다』하면 서 그 충절에 감탄하였다 한다

 

-- 반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공신이 되어 훈작을 받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부귀를 도모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었다. 즉, 하사받은 토지 이외에 사적으로 전지와 노비를 불리고 호화롭게 저택을 지어 분수에 어긋나는 등 권귀화(權貴化)하였던 것이다.

 

 

-- 따라서 자연히 이에 대한 견제세력이 생겨나게 되어, 인조반정의 주동세력인 서인정파내에서 공서(功西·반정 공신세력)와 청서(淸西·비판세력)의 노선분립이 가속화하였다.

 

-- 김상헌은 초야에서 학문하던 산림(山

林)의 주도자로서 청서파의 비판세력을 대변하였다. 그가 처한 상황과 그의 강직한 성품으로서 당연한 귀결이었다. 공신 중 한 사람인 김류 조차 『그를 만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등이 땀에 젖는다』고 하였다

 

-- 6년동안 청나라에 잡혀가 있는 동안에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 청나라 사람조차 『김상헌은 감히 이름을 부를 수 없다』고 하면서 존경하였다.

 

-- 어떤 공자가 둥근 기둥을 사용하여 정자를 지었다가 곧 기둥을 깎아 네모나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둥근 기둥은 궁궐에만 쓰게 되어 있었는데 월권하려다가 김상헌의 칼날 같은 공직수행 자세에 겁을 먹은 것이다.

 

   

--김상헌은 인조반정(1623년) 후 공신들에게 편지를 보내 광해군에게 후하게 할 것을 권고하였다. 앞의 유희분에 대한 처사와 마찬가지로 억강부약(강한 자는 억누르고 약한 자는 부추겨 도와준다)하는 조선선비의 가치지향성을 보여주는 예화라고 할 수 있다

 

-- 사신(史臣)은 그의 졸기(卒記)에서 『옛 사람이 문천상이 송나라 3백년의 정기를 거두었다고 했는데 지금의 논자들은 문천상 뒤에 동방에 오로지 김상헌 한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고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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