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贊成公(達行) 가문

덕온공주 시집가는 날

추읍산 2016. 10. 9. 13:26

‘1837년 가을 어느 혼례날-덕온공주 한글 자료’

전시하는 곳 : 국립 한글 박물관

기간 : 9월 13일 - 12월 18일

 

국립 한글박물관에서는 위와 같은 제목으로 한 공간을 마련했고 몇일전 다녀왔다..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년 - 1844)는 조선 제 23대 왕인 순조(1788 - 1834, 재위 1800 - 1834)와 순원왕후(1889 - 1790) 사이에서 3번째의 공주로 태어났다. 순서대로 쓰면 효명세자, 명 온 공주, 복온공주, 그리고 덕온공주이다. 모두 일찍 세상을 떴는데 왜 그렇게 명이 짧았을까? 1837년 순원왕후에게는 덕온공주가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었는데 그 사랑이 더 했을 것이다. 공주마저 명이 짧아 운명(殞命)을 전후하여 어머니의 사랑이 묻어 나오는 현장이 있다. 공주는 조선 마지막 공주이고 그 흔적이 온전하게 남아있어 감사하다.

 

공주는 결혼한 지 7년 후인 1844년(헌종 10년) 음력 5월 24일 불과 23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이 날은 헌종의 계비를 간택하는 날로, 당시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던 덕온공주가 경사를 치르기 위해 창경궁 통명전에 들어갔다가 점심으로 먹은 비빔밥이 급체한 것이다. 사망하기 직전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곧바로 사망하였고, 공주 역시 아이를 매장한 지 약 두 시간 정도 있다가 사망하였는데 23세이다. 한편 덕온공주의 남편 윤의선은 고종 때인 1887년(고종 24년) 음력 12월 29일 사망하였다. 윤의선에게는 사후 3년간 녹봉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전시는 1837년 덕온공주의 혼례와 혼인생활로 나눠 꾸몄다. 전시장에서는 덕온공주는 생원 윤치승(1789~1841)의 아들 윤의선과 혼례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다.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혼수 발기 등이 포함됐다.

 

길이 5m가 넘는 덕온공주 한글 혼수 발기에는 노리개·비녀·댕기 등 장신구부터 사발·대접 등 그릇과 가위·인두 등 바느질 도구까지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이 갖춰져 있다. 발기에 남은 한글을 통해 19세기 당시 혼수품으로 가져갔던 ‘단쵸’(단추) ‘쳔니경’(천리경) 등 우리말 어휘도 확인할 수 있다.

 

단국대 석주선기녀박물관이 소장한 1837년 덕온공주 혼례 당시 쓰였던 노래개와 비녀 상자, 화각 모필 등의 물건도 전시됐다.

 

덕온공주이 살림집인 저동(현재 서울 중구)에서의 생활도 만날 수 있다. 시집간 공주는 궁을 함부로 드나들 수 없어 덕온공주와 순원왕후가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데 큰 역할을 한 한글편지 등이 전시됐다. 혼례 후 저동궁으로 들어가면서 가져간 책 가운데 덕온공주가 직접 베껴 쓴 것으로 전해진 ‘일촬금(一撮禁)’ ‘춘련(春聯)’도 나왔다.

 

전시장에는 증강현실(AR)을 적용, 덕온공주의 혼례 과정과 윤의선이 받은 혼수 발기의 내용을 보여 주는 영상 등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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