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충주 박물관으로부터 두 권의 책을 받았다. 모두 정조대[김이소(金履素 1735(영조 11)∼1798(정조 22).], 김이도[金履度 1750(영조 26)∼1813(순조 13). 형제])와 순조대(김이도)의 안동 김씨 인물과 관련된 책들이다. 사진은 그중 하나인 김이소의 부연축시 속 한 문장이다. 오랑캐라 일컫는 여진족이 세운 淸에 의해 明이 접수된 지 100년이 흘러갔고 뿌리 깊은 성리학은 결코 명을 잊을 수 없었다. 명은 중국에서 한족으로 중원의 주인이며 절대적인 비중이기 때문이다. 연경은 오늘의 북경을 일컫고 중국의 수도이다. 1791년 이후 어느 때 연경을 사행길로 떠나 그곳에서 청나라 황제를 알현하고 느낀 바를 적은 것이다.
숭명배청은 오늘날 잘못된 사조로 지탄받고 있다. 과연 옳은 일인가?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8천 리 사행길 걸어서 걸어서 갔다. 어떻든 변방의 작은 여진족이 중원을 차지하고 틀고 앉아 전 중국을 다스리고 있다. 참으로 일어날 수 없는 대 사변으로 당시 중국으로서는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이자성과 오삼계가 지축을 흔들어 작고 미개한 존재인 변방의 청이라도 일단 수도를 점령하고 천제를 지내 즉위하면 모두 위에 군림해 그렇게 질서는 잡혀 갔고 조선에서는 오랑캐로 여기는 그들을 상국으로 섬길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주인으로 자리 잡은 청,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인지라 이 울분, 글로 적어 놓으니 이것이 당시의 현실이다.
김이소 형제는 諱 坦行의 아들이다. 저의 8대조 諱 達行의 바로 아랫 동생이니 7대조 諱 履基와 4 촌간이 아닌가? 선조이신 淸陰(諱 尙憲)의 6대손으로 이어져온 절개 감회가 남다르다.
김이소 알아보기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1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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