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庶尹公의 후예

오현회(梧峴會) 문중묘역 성묘

추읍산 2017. 10. 9. 15:07

오늘 저희 8대조 할아버지 20세 달행(諱 達行 1706~1738) 의 막냇동생이신 위행(諱 偉行, 1720-1752, 자 幼繩) 문중 묘역을 다녀왔습니다. 梧峴會의 안내를 받았는데 회장이신 윤동 씨, 총무이신 의동 씨께 감사함을 표합니다. 묘역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163-1로 남향이다. 유승께서는 안동김씨 시조 휘 宣平의 후예로 12세 庶尹公 번( 諱 璠 1479-1544), 15세 휘 文正公 상헌(諱 尙憲 1570 -1652)의 후손으로 조선조 유일의 일묘사충[一廟四忠 은 壽恒-昌集-濟謙-(省行)]의 맥을 이으셨다.


公은 忠愍公[諱 濟謙 1680(숙종 6)∼1722(경종 2)]의 여섯 아들 중 막내로 1720년 태어나셨다. 큰 형님은 忠正公 성행(諱 省行)으로 일묘사충을 완성하시고 둘째 형님은 준행(諱 埈行)이니 곡운(諱 壽增)의 둘째 아들이신 휘 昌肅의 손자로 입적하셨다. 셋째 형님은 文敬公(諱 元行)으로 둘째 작은 할아버지인 文簡公(昌協 1651-1708)의 손자로 입후하셨고 넷째 형님은 좌찬성으로 증직하신 贊成公(諱 達行) 이고 바로 윗 형님은 諱 坦行이시다.


公의 配는 남양홍씨 이시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시니 男 이완(휘 履完)은 밀양부사를 역임하시고 配는 연안이씨 이시다. 女는 풍산인 洪樂賢에게 출가하셨다.


마음의 병 이었을까? 일묘사충을 완성한 1722년은 경종 2년으로 신임사화라는 피바람이 불었는데 할아버지, 아버지, 큰 형님 께서 화를 입으실 적에는 세 살 이셨으니 그 충격과 고통은 이후 경제적, 정신적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33세라는 짧은 삶을 사신 것도 저희 8대조(휘 달행)와 같으시니 이 또한,  士禍가 몰고 온 마음의 병이었을 것이다. 처음 산소는 경기도 포천군 외북면 國谷巳坐 이다. 묘역은 개발에 밀려 2011년부터 이곳에 문중묘역을 조성하니 아름답게 꾸며지고 있고 이어질 것이다. 뜻깊은 날로 빛 쏟아지고 있었다.  梧峴會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시조 김선평(諱 宣平)

15世 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

 

19世 濟謙

 偉行

1720-1752

 坦行

1714 -1774

 達行

1706~1738

 元行

1702-1772

 

1701-1743

 省行

1696- 1722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산 163-1 오현회 문중묘역으로 2011년부터 조성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표석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諱 偉行 묘소


 

 오현회 회장님이신 윤동 형님과 포즈를 잡았다.


 안내한 표석



'안동 김씨 > 庶尹公의 후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 리 물길 함께 다녀오소서   (0) 2017.11.02
10월의 석실서원과 삼주삼산각  (0) 2017.10.29
김삿갓 문화제  (0) 2017.09.24
조선의 절개   (0) 2017.08.15
명온공주를 뵙다  (0) 2017.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