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선 제 23대 왕인 순조와 그 비인 순원왕후 기신제가 있는 날이다. 2013, 10, 20 그때는 단순 참석이었는데 제향이 끝나고 대중 앞에서 인사드린 바 있다. 둘째 공주인 창녕위 댁의 통년 씨가 아헌관으로 봉행하였는데 어느덧 4년이라는 공간이 흘렀다. 그후 창녕위댁 소관으로 생각하였는데 이번에는 인릉 봉양회에서 기신제에 참석할 아헌관을 보내달라는 공문이 안동김씨 대종중으로 왔고 다시 필자가 근무하는 서윤공파 종중에서 넘겨받았다.
필자는 순원왕후의 큰 오빠인 황산 김유근[諱 逌根은 영안 부원군 김조순(諱 祖淳)의 큰 아들이다)]의 5대 종손이다. 황산 할아버지께서 큰댁인 諱 龍淳(필자의 6대조) 앞으로 양자를 가셨고 찬성공(諱 達行)의 종통을 이으시니 바로 아랫 동생 諱 元根이 영안 부원군 계통(諱 履中의 종통)을 이었고 그 고손이 김주한(형님이 정한 씨로 작년 별세하셨고 그곳 종손 형동은 미국거주)씨다.
급박하게 이루어진 일이고 어제는 영안 부원군 댁 주한 아저씨, 그리고 만동 씨에게 전언했는데 일정상 참석 못한단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아래 표로 대신한다. 필자는 20세 찬성 공 휘 달행의 8대 종손으로 표 우측이고 휘 定圭 의 증손이다.
며칠 전 인릉 봉양 회장 이동우 씨와 집행진을 만나 설명을 들었고 저녁을 같이 하면서 기초를 쌓았다. 오늘 다시 만났고 여러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11시 30분경 행렬을 시작으로 내내 숙연하였는데 날씨 또한, 화창해 빛 쏟아지고 있었다. 인릉 봉양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시조 김선평(金宣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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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상헌(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0세 金達行(1706~1738)
붉은 테두리는 필자의 직계
21세 | 履慶 1738~1816 | 履中 1736~1793 | 履基 1724~1790 | |||
22세 | 明淳 生父 履基 1759~1810 | 祖淳 (영안부원군으로 순원왕후의 아버지) 1765~1832 | 龍淳 1754~1823 | |||
23세 | 興根 1796~1870 | 應根 1793∼1863 | 弘根 1788~1842 | 左根 1797~1869 | 元根 1786~1832 | 逌根 生父 祖淳 1785~1840 |
24세 | 炳德 1825~1892 | 炳始 1832~1898 | 炳溎 1824~1855 |
炳冀 生父 泳根 1818~1875
| 炳地 1830~1888 |
炳㴤 生父 弘根 1827~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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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 宗圭 1862~1922 | 容圭 1864~1902 | 性圭 1846~1896 | 用圭 1867~1927 | 錫圭 生父 炳洙 1864~1905 | 定圭 1862~1903 필자의 曾祖 |
시작 전 먼저 인릉을 찾았다
인릉 기신제를 준비하는 재실(齋
아헌관 金澈東
중앙 서계신 분이 인릉봉양 회장 이동우 씨
재실을 나서 인릉으로 행렬이 시작됐다. 이후 아헌관으로서 사진을 촬영할 수 없었다. 봉양 회장님께 사진을 부탁했는데 도착하면 추가하겠다.
동행한 종인 김천일씨로부터 카톡으로 받았다.
이동우 인릉 봉양회장님으로부터 받은 사진
인릉 봉양회장 이동우 회장님으로부터 받은사진으로 식전 대중앞에서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
이동우 회장님으로부터 받은 사진으로 식후 기념사진으로 중앙은 이동우 회장이고 그 좌측이 필자로
진짜 제향모습은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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