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선현들의 발자취

고립무원의 47일

추읍산 2017. 10. 21. 18:34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인조 14)은 임진왜란이 끝난 지 38년이 되었을 때다. 유비무환이라는 큰 교훈을 얻고도 왜 대비하지 않았을까? 이웃이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은 중원(中原)을 차지하는 자가 주인으로 되었고 그곳에는 절대적인 비중(比重)의 한족(漢族)이 자리하여 나라를 세우고 이어 왔는데 때로는 변방에게 내어주는 수모를 겪었으니 원(元 1271~1368), 청(淸 1616~1912)이 그 예이다.


추석날(10월 4일)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이 관람객 수 3,725,657 명 (2017.10.20)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단다. 두 주인공인 청음(김상헌), 지천(최명길)이 나라의 정체성도 살렸고 위기에서 구했다. 엎디려 굴욕 하고 당장의 위기를 넘기려고만 한다면 그들(청)은 조선을 어찌 보았을까? 혼도 없는 나라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을까? 흔적을 읽으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앞날은 예측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잠시 가다듬어 보자. 명은 절대적인 비중의 한족이 세운 나라이다. 어찌 만주의 여진족이 세운 청에 비하랴. 아무리 신흥 발호국 이라지만 그 국력은 하늘과 땅의 차이다. 그러나 명은 내홍을 겪고 있었다. 하늘은 명을 돕지 않았다. 이자성과 오삼계가 지각을 흔들어 놓지 않았다면 절대로 청은 만리장성을 넘지 못했으리라. 어찌 중국의 통한이 아니랴!!


조선은 명이 청을 토벌할 것으로 믿었다. 순리에 역행할 수 없고 이는 또 한 번의 외환을 자초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정보력이 절대 부족한 그때를 지금에 견주어 비교하지 말자. 민주주의 우리나라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국력의 신장을 가져왔다. 우리는  중국에서 하늘과 땅이 뒤 엎어짐을 바라보았고 6, 25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을 겪었다. 교훈으로 삼지 못하고 먹구름은 몰려오고 있다. 이성이 있어 있음이니 위기에서 나라를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