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요일이다. 같은 서윤공파 소속으로 문정공(휘 상헌) 후예인 선규 씨와 함께 저의 고향을 찾았고 교통은 막힘이 없었다. 11시 이전 도착했고 저수지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았다. 정현 집에 있었고 추읍산과 그 산자락에 둘러싸인 마을입구 언덕 위에 하얀 집이 내 쉴 곳이다. 호수가 바라보이는 곳이고 터전 가꿈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을 햇살을 가득 머금은 한낮으로 빛 쏟아지고 있었다.
두 시간도 머물지 못하고 귀경길에 올랐다. 함께 석실선영을 찾았고 점심 후 미음나루터로 향했다. 농암(휘 창협), 미호(휘 원행) 두 분 할아버지의 사시던 집 삼주삼산각을 새기며 그러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마을엔 음식점이 즐비하다. 고개 너머가 석실서원 터고 산길은 걷고, 자전거 길로만 허용되어 다시 나와 석실서원 터를 찾았다. 조말생과 그 후손 묘역에 둘러싸인 석실서원 터가 쓸쓸한데 그 옛날 영화는 어디로 갔는가? 동량들의 글 읽는 소리 파도쳐 오는데 차마 듣기 어렵구나.
겸재정선이 그린 석실서원
그 옛날 영화는 어디로 가고 표석 홀로 외롭다. 조선 후기 인재를 키우던 곳 맞나? 훗날 조상님 어찌 뵐까?
남양주 역사박물관에서 전시하는 석실서원 복원도
석실서원 뒷동산으로 지금은 려말선초의 조말생 묘역이 자리하였다. 미호를 둘러싼 수려한 경관으로 저 흐르는 물조차 돌아서고 숨바꼭질하는데 부끄러워 어찌 마주하리오
겸재정선이 그린 삼주삼산각으로 중앙에 농암(김창협)과 그 손자 미호(김원행)께서 사셨던 삼주삼산각이 미호를 마주하고 있다. 석실서원과는 지척이다.
식도락가들이 즐겨 찾는 곳, 미음나루터엔 조각탑이 우람하다. 이곳이 조선시대 아니 1950년대에도 숱한 사연을 실어 날랐을 것이다. 옛 영화는 어디로 가고 세인들의 관심 밖이다. 음식 냄새 가득한 거리엔 미호(渼湖)의 물결 밀려오고 있다.
이곳은 농암(金昌協 1651년(효종 2) -1708년(숙종 34) 자는 仲和, 호는 農巖, 三洲]할아버지의 또 하나의 호인 삼주를 따서 그 거처하시던 곳을 삼주삼산각(三洲三山閣)이라 하였다. 작은 능선 너머가 석실서원이다. 탑엔 작은 안내판이 있는데 글 속 삼주삼산각을 상주상산각으로 두 곳에서 잘못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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