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庶尹公의 후예

명온공주와 부마 김현근의 묘비문

추읍산 2018. 9. 10. 20:48

명온공주와 부마 김현근의 묘비를 찍었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좌측면 전체모습으로어둡다 





한국고전종합DB


미산집 제13권 / 묘표(墓表)

동녕위 김공 현근 묘표〔東寧尉金公 賢根 墓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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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온공주(明溫公主)를 장례 지낸 지 37년이 지나 도위(都尉) 김공(金公)이 세상을 떠났는데, 2년 후에 공주의 묘에 합장을 하였으니 실로 양주(楊州) 종암(鍾巖)의 유방(酉方 서쪽) 언덕이다. 그 후 23년이 지나 공의 손자 참판(參判) 덕규(德圭)가 공의 묘지(墓志)와 행장(行狀)을 받들고 와서 장석(章錫)에게 묘표문을 부탁하면서, “그대의 외대부(外大父) 연천(淵泉) 홍공(洪公)께서 교지를 받들어 귀주(貴主 명온공주)의 비문을 지은 지 지금 한 갑자(甲子 60년)가 지났는데, 그대가 또 태사(太史)의 직책에 있으니 감히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공의 휘는 현근(賢根)이고, 자는 성희(聖希)이며, 안동(安東)이 본관으로 선원(仙源) 문충공(文忠公) 휘 상용(尙容)의 8대손이다. 부친 휘 한순(漢淳)은 공조 판서를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모친 증(贈) 정경부인(貞敬夫人) 평산(平山) 신씨(申氏)는 각(愨)의 따님이다. 조부 휘 이양(履陽)은 이조 판서로 벼슬에서 물러나 영중추(領中樞)에 추증되었으며, 증조부 휘 헌행(憲行)은 판관(判官)을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공은 순조(純祖) 경오년(1810, 순조10)에 태어나서 14세에 공주에게 장가들어 동녕위(東寧尉)에 임명되었다. 두 번 사명(使命)을 받들었고, 여섯 번 향관(享官)이 되었으며, 제거(提擧)의 사(司)를 열세 차례 지냈다. 금상(今上 고종) 을축년(1865, 고종2)에 특명으로 상보국(上輔國)ㆍ판돈녕(判敦寧)ㆍ의금부(義禁府)의 자리에 올랐는데 남다른 예우였다.
공은 부모를 섬기는데 지극한 성품이 있었으며 병환을 간호하는 데 있어서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거상(居喪) 중에는 정도에 넘게 지나치게 슬퍼하여 몸을 상하였다. 백씨(伯氏) 판서공(判書公)과 밤낮으로 상을 마주하고 즐겁게 지냈다. 공이 동자였을 때 불러서 오언절구를 지어보게 하였는데 뜻이 툭 트이고 시어(詩語)가 빛나서 순조(純祖)께서 대단히 기특하게 여겼다. 부마로 선택되자 더욱 신중하게 몸가짐을 하였으며 근면으로 직책을 받들고 정성으로 남들을 대하였다.
공은 평소에 임천(林泉)을 사랑하여 동문(東門) 밖에 정자를 세우고 주변에 거문고와 책을 마련해 두어 소연(蕭然)히 세속을 벗어날 생각을 하였다. 만년에 결성(結城)에 있는 부모의 묘소 옆에서 거상(居喪)을 하였는데 병이 심하여 집안사람들이 서울 집으로 돌아와 병을 치료하라고 청하였으나 설득할 수 없었다. 백씨가 울면서 힘써 권한 후에야 길을 나섰는데, 서울로 들어온 지 6일 만에 세상을 떠나니 무진년(1868) 8월 25일이었다. 부음이 알려지자 임금께서 몹시 슬퍼하셨으며, 특별히 영의정에 추증하고, 동원(東園)의 부기(副器)를 보내주어 상장(喪葬)을 전례(典例)대로 갖추게 하였다.
양자(養子) 병삼(炳三)은 돈녕(敦寧)과 참봉(參奉)을 지냈는데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집안 조카뻘인 병관(炳瓘)의 아들 덕균(德均)을 데려와 손자로 삼았고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서자(庶子) 병수(炳洙)는 판관(判官)이고 병하(炳河)는 감찰(監察)이고 병룡(炳龍)은 검서관(檢書官)이다.
공은 비록 일찍 귀한 신분이 되었으나 법도를 잘 지켜서 궁궐에 출입한 지 50년이 다 되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하고 조신하여 다섯 조정에서 받은 특별한 은총을 보존할 수 있었으며, 어진 의빈(儀賓 부마)이라고 성대하게 칭해졌으니 참으로 자손의 법도가 될 만하다. 그 은졸(隱卒)의 교시에서 “조심스럽고 신중하여 일생 동안 자신을 지킨 것을 나 또한 깊이 알고 있다.”고 하셨는데, 아! 이는 족히 백세(百世)를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
[주-D001] 명온공주(明溫公主) : 
1810~1832. 순조의 딸로 모친은 순원왕후(純元王后)이다. 동녕위(東寧尉) 김현근(金賢根)에게 하가(下嫁)하였는데 태어날 때부터 몸이 병약하여 혼인한 지 9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주-D002] 제거(提擧)의 사(司) : 
조선 말기, 종묘서(宗廟署), 사직서(社稷署), 영희전(永禧殿), 경모궁(景慕宮)에 둔 칙임(勅任)의 으뜸 벼슬이다.
[주-D003] 결성(結城) : 
충청도 홍주목(洪州牧)의 속현(屬縣)이다.
[주-D004] 은졸(隱卒) : 
공신이 죽었을 때, 임금이 슬픈 마음을 나타내는 일을 이르던 말이다.


출처 : 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645A_0140_010_0040&solrQ=query%E2%80%A0%EB%8F%99%EB%85%95%EC%9C%84%20%EA%B9%80%EA%B3%B5%20%ED%98%84%EA%B7%BC%20%EB%AC%98%ED%91%9C%E3%80%94%E6%9D%B1%E5%AF%A7%E5%B0%89%EF%A4%8A%E5%85%AC%20%E8%B3%A2%E6%A0%B9%20%E5%A2%93%E8%A1%A8%E3%80%95$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BT_AA$solr_toalCount%E2%80%A01$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GS_ITKC_BT_0645A_0140_01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