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19년 3월 20일 편저자가 안동김씨대종중이고 예문춘추관에서 펴낸 안동김씨 선세행록(安東金氏 先世行錄) p136 병주 편에서 발췌하였다. 처음 접하는 내용이고 아 ~ 이런 일도 있었구나, 여기 담고자 한다. 대종중에 감사함을 표한다. 김병주(諱 炳㴤 필자의 고조 할아버지)에 대하여는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아래와 쓰고 있다.
보기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09219
병주(炳㴤)
공은 대원군이 흥선군(興宣君)으로 매우 곤궁(困窮)하게 지낼 때부터 정다운 벗으로 지냈으며 물질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었으므로 대원군도 국태공(國太公)으로 집권한 후 안동김씨(安東金氏 )들을 미워하였으나 공에게 평양감사[平壤監司 - 필자주 :고종 때가 아닌1860(철종 11년) 윤 3월 부터 1년여, 평안감사가 맞습니다],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이조판서(吏曹判書)도 시키었다. 공이 어느 날 운현궁을 찾아가니 때마침 대원군이 중국에서 「오시안경(烏視眼鏡 :색안경) 」의 극상품(極上品)을 사다가 써보고 있을 때라 자랑삼아 공에게 그 안경을 한 번 써보라고 하며 씌워주고는 실없는 소리 잘 하는 대원군은 “네가 그것을 쓰니 꼭 개눈깔 같구나.” 하고 농담을 하였다.
공은 대원군의 이 농담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곧 운현궁 청직(雲峴宮廳直)이를 불러 썼던 안경을 벗어주며 “이 안경을 내집 하인에게 내주라.” 라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대원군은 깜작 놀라며 “이 사람아 내가 이 안경을 자네더러 써보랬지 언제 아주 가지라 했나.” 하며 이의를 하여 오는지라, 공은 짐짓 정색(正色)을 하며 대답하기를 “일국(一國)의 국태공으로 개눈깔에 썼던 안경을 어찌 쓰실 수 있겠습니까.” 하며 시치미를 떼니 대원군은 어이가 없어 하는 말이 “내 참 대낮에 도둑놈에게 꼼짝 못하고 안경을 뺏겼구나.” 하고 껄껄 웃었다는 것이다.
(會報 第 174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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