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贊成公(達行) 가문

며느리(諱 元根 配 완산이씨)를 移葬하며 - 김조순(諱 祖淳)

추읍산 2019. 4. 3. 12:43

영안부원군(김조순)의 2자 원근은 큰아들 유근이 큰댁으로 입적되었으므로 부원군의 대를 이었다. (初配) 완산이씨가 뚜렸하다. - 이천시 부발읍 가좌리 -

 

아랫글은 백촌거사(http://blog.daum.net/baikchon001)가 보내온 글로 옮긴다.

 

祭亡子婦淑人完山李氏文
제망자부숙인완산이씨문
김 조순(金 祖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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維辛巳十月十有四日辛卯。子婦完山李氏之柩。遷自始興。越六日丁酉。葬于利川嘉佐洞之原。其舅楓皋居士。新創毒沴。不克主事。觖然含愴。垂淚爲文。使族弟之隨紼者。於葬之朝。侑奠以告曰。嗚呼賢婦。昔余之葬賢婦。吾舅婦之情。特異於人者。於銘已諗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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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辛巳 년(1821순조 21 년)10월14일 신묘 날에 며느리 완산이씨 관을 시흥으로부터 옮겨 6일 정유 날을 넘겨  이천 가좌동 언덕에 장사를 지냈다. 시아버지 <풍고거사>는 새로 생긴 부스럼과 지독한 전염병으로 주관하는 일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운하게 생각하며 슬픔을 머금고 눈물을 드리우며  이 글을 쓴다.일가의 아우가 되는 사람을 시켜 그 날 아침에 장지에 상여 줄을 따르게 하였다. 술 한 잔을 올리면서 고한다. 아아 ! 어진 며느리여. 옛날에 내가 부인의 장례를 지낼 때에는 나의 장인과 부인의 정은 다른 사람과 특이하여 명을 짓는 것에는  말씀을 드려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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雖死生殊途。久近異致。遺孝墜愛。何日忘之。蓋十五年于玆矣。今賢婦之柩。復出於人世。賢婦之端儀淑容。怳惚眼中。若將以輿服紀綱。迎婦于家矣。賢婦而有知。亦必望余之臨撫。以慰其幽明隔絶之久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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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비록 죽고 삶의 길이 다르고 멀고 가까움이 서로 다르나 효가 버려지고 사랑이 무너지고 있으니  어느 날에는 잊어버릴 것이다. 덮은 지  15 년이 되었다.< 1807 丁卯 순조 7 년 6月 5日 卒-辛巳1821순조 21 년 >오늘<辛巳1821순조 21 년> 어진 며느리의 관이 인간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었다. 어진 며느리는 단정한 모습이었고 맑은 용모였다. 눈 속에 황홀하였다. 만약에 앞으로 輿服으로써 기강을 따른다면 며느리를 우리 집으로 맞이할 것이다. 어진 며느리이기에 앎이 있을 것이다. 또한 나의 임무<臨撫>를 반드시 바랄 것이고,  이승과 저승이 막아 끊어짐이 오래된 것을 위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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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之改葬。其舅與婦者。神人之際。皆必如此。而吾舅婦之情。特異於世人者乎。然而賢婦。而竟不可返其室。則余之慟。殆甚於始葬賢婦之日。然余病不得往視。則賢婦之靈。將復齎悵恨於冥冥。是知賢婦之孝余。必不異於平昔。而余之愛賢婦。若有負於今日矣。

 

국역
세상에서 개장( 緬禮 緬奉 移葬- 무덤을 옮겨 장사지냄)은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것이다. 세상에서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위하여 개장( 緬禮 緬奉 移葬- 무덤을 옮겨 장사지냄)하는 것이다. 신명과 인간의 사이는 모두다 반드시 이와 같아서 나의 장인과 부인의 정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특이한 것이다. 그리하여 어진 며느리이기에 마침내  내 집안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서럽게 통곡할 것이다. 어진 며느리가 처음 장례를 치르는 날보다 더욱 심할 것이다. 그래서 나의 병으로 가서  못 보는 것이라면 어진 며느리의 영혼이 저 어둠 속에서 슬픈 한탄을 가져올 것이니 이것이 어진 며느리의  나에 대한 효성이라는 것을 알겠도다. 반드시 평소와 다르지 않아서 나의 사랑하는 어진 며느리는 오늘을 저버리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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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慟此恨。于何其已。惟期余異日歸地下相見可已。奈何乎。悲莫悲矣。嗚呼賢婦。始興之宅。丐借於人。本非遠圖。况吾家墳墓。皆在於東。必東之計。斷惟素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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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이 슬픔 이 한탄에 어찌 된 일인가. 오직 기약할 것은 내가 다른 날에 지하로 돌아가서 서로 만나게 될 것을 어찌하리. 더할 수 없이 슬픔이로다. 아아 ! 어진 며느리이구나. 시흥 땅의 집 <幽宅>은 졸라서  남에게서 빌린 것이라 본래의 원대한 계획이 아니었다. 하물며 내 집안의 무덤들이 다 동쪽( 여주군 대신면, 추읍산 향리마을-(지금은 양평군)에 있는데 평소 생각한 바대로 반드시 동쪽으로  갈 계획이  중단했음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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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幸卜兆于利。利與驪疆土相接。登是兆而望。其東北之穹然圓峙者。卽趨揖山。此山之下。吾父母祖父母之所托也。其北十里而近者。卽孝子里。余所營首邱之岡也。賢婦於是兆。與吾父母祖父母魂氣。日夕相望相往來。以俟余夫妻之歸所營。則竟千萬年。吾舅婦特異之情。可續而無復憾矣。其與孑寄他山之側。四顧而無可依。神理慰喜當如何矣。卽此安固以利其嗣人。嗚呼賢婦。應不震矣。尙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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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오늘 다행히 경기도 이천 땅에 터(옮긴이 주 : 부발읍 가좌리)를 잡았다. 이천과 여주의 영토는 서로 인접하여 있어 올라가 이 땅에서 바라보면 그 동북쪽에 깊고도 높게 우뚝 솟아 있는 것이 곧 추읍산(趨揖山:583m. 용문산<1.157m>에 揖하고 있는 형상. 속설로는 七邑이 보인다 하여 七邑山이라고도 함 )이다. 이 추읍산 아래로는 내 보모님과 조부모님께서 의탁한 곳이라.< 墓域이 있음을 말함 > 그 북쪽(옮긴이 주 : 부발읍 가좌리에서 바라보아)으로 십리 가까운 곳에는 곧 <효자리(옮긴이 주 : 오늘의 흥천면 효지리)>라는 마을에는 내가  경영해 갈 고향을 생각하는 언덕이 있다.

 

이 땅의 어진 며느리와 함께 나의 부모, 조부모의 영혼들이 밤낮으로 서로  바라보기도 하고 오고가며 할 것이다. 나는 기다릴 것이다. 우리들 부부는 돌아가 경영하면서  마침내 천만년을 살 것이다. 나의 장인과 며느리의 특이한 정이 계속 이어져서 다시는 한탄함이 없어야 된다. 더불어 너의 외로운  몸을 다른 산 곁에 머무르게 했으니 사방을  돌아보아도 아무도 없구나. 그러나 神道가 위로해 줄 것이니 마땅히 어떠하겠는가. 곧 이를 안전하고 튼튼하게  함으로써 그 후손들에게도 이로우리라. 아아 ! 어진 며느리는 당연히 놀라지 않을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