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효명세자와 김유근

효명세자(孝明世子)가 김유근에게 내린 영서(令書) 한글역

추읍산 2019. 8. 3. 09:02

백촌거사(http://blog.daum.net/baikchon001)가  한글로 번역하여 지난 7월 7일 받았고 본란에 싣는다. 본 영서는 9월 22일까지 전시하는 국립고궁박물관 효명세자 특별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내용을 몰라 궁금했는데 번역하신 백촌께 감사함을 표합니다.




1. 王世子若曰 一面當保障之重 正須彈壓之       人八座 㨂望實之隆俾居揔          28
2. 理之地特用補外之例爰畀留後之任惟卿世      篤忠貞家傳詩禮處地                27
3. 與他自別同休戚於國家雅望爲世所推叅訏       謨於廊廟 躋崇秩而常              27
4. 懷兢惕謙約卽其成䂓抱利器而合試錯盤文       章乃是餘事蜚英                   25
5. 早歲贊黼黻而歷敡者旣多斂跡名途佐銓衡       則缷免而乃已 向                  25
6. 也西藩之許解不過曲循其私至於中權之力       辭 特推禮使之義 睠玆             27
7. 華城拱護之地卽我 先朝經始之基衛 仚寢      而翼神京軆貌 爲四                         25
8. 都之冠控畿甸而作巨鎭管轄處三路之衝山       川草木尙被  雲漢之                      26
9. 輝城郭樓譙永鞏陰雨之備原廟奉月遊之所       漢 西京之瞻依                               24


10. 斯存高山頌天作之詩周東郊之保釐㝡重玆      授卿以水原府留                                25
11.守兼揔理使卿其祗服厥命往愼乃司繕財      賦而撫軍民 岡忽三輔                            26
12.之防禦修城池而簡卒乘克軆 重宸之委毗      楨幹播譽豈專                                      23
13.申伯之美蹟裘帶坐鎭宜追叔子之遺風是吾     股肱非威望孰 能鎭                              26
14.也託以肺腑伊揀選豈徒然哉何可使置散而      投閑盖欲其視 外而                          26
15.猶內淸愼恬簡已著克家之雅規保輯懷綏益      勉作屛之嘉績                                   24
16. 於戱 四時奉芬苾之禮慰余羹墻之思一府    壯 鎻鑰之威藉卿                                  24
17. 鈴轄之略 故玆令示想宜知悉          12
18. 道光 七年 九月 十五日                9

✱해서체. 황산 諱 김 유근 글씨
   총 18줄 447 글자  
                                  
          


                                  

 왕세자(=孝明世子)는 아래와 같이 이르노라. 한편으로 保障[보루와 장벽, 즉 국방]의 중대한 일을 당하여, 참으로 이 일을 통제할 사람이 모름지기 필요한데, 八座(육판서와 좌우참찬)에서 명망과 실력이 높은 사람을 선발하여, 모든 일을 처리하는 자리에 앉혀, 특별히 외직으로 보내는 전례에 따라, 이에 留守의 직임을 주노라.

생각하건대 경은 대대로 충정이 매우 도탑고 신실하고, 집안에 시례(詩禮)의 학문을 전하였으며, 처지가  다른 사람보다 정분이 유달리 두터워 국가와 기쁨과 근심을 함께 하였으니, 고아한 명망으로 세상에서 추앙하고, 조정에서 원대한 계책을 논하는데 참여하였다 .높은 벼슬에 올라서도 항상 경계하여 삼가 조심하여 겸손하고 검약함은 곧 규범을 이루었으며, 예리한 기량을 안고 한꺼번에 어려운 업무를 맡았으니 문장 짓는 일이야 하찮은 일이었다. 이른 나이에 이름을 날려 임금을 도와 두루 역임한 직책이 이미 많고 벼슬길에서 자취를 감추되 銓衡을 돕는 일은 사임되어서야 그만두었다.

지난 번 西藩<평안도 관찰사>의 해임을 허락한 것은 사사로운 사정을 따랐을 뿐이고, 中權의 직임을 애써 사양한 경우는 특별히 예(禮)로써 부리는 의리를 헤아린 것이었다. 돌아보건대, 이 華城=<=水原>은 감싸 호위하는 땅이니, 곧 나의 선왕조<=< 정조>께서 처음 세우신 터전으로, 仙寢<= 사도세자 릉, 융릉>을 호위하고 도우니, 神京<=서울. 한양>의 체모가 四都<개성(開城)·강화(江華)·수원(水原)·광주(廣州)임>의 으뜸이 되었으며, 畿甸을 당겨서 지으니 巨鎭의 管轄이 三路의 요충지에 자리 잡았다. 

산천초목에는 아직도 은하수의 광채(=제왕의 덕)가 덮여 있고, 성곽과 망루는 오래도록 유지되었고, 위험한 일에도 미리 대비를 하였다. 原廟 에서 月遊하던 곳을 받들어 漢나라 西京의 瞻依를 이에 간직하고, 高山에서 天作의 詩를 頌하여 周나라 東郊를 편히 다스림이 가장 중요하다.

이에 경에게 수원부유수 겸 총리를 제수하여, 경으로 하여금 삼가 그 명을 따라 임지에 가서 신중히 직책을 맡게 하노니, 財賦를 수리하고 軍民을 위로하여 三輔의 방어를 소홀히 하지 말고, 城池를 수리하고 군졸과 수레를 선발하여 임금이 맡긴 중임을 수행하라. 楨幹으로서 알려진 명예로야 어찌 유독 申伯의 아름다운 자취만 있겠는가,  裘帶로 坐鎭하는 것은 의당 叔子(羊祜)의 남긴 풍도를 따라야 할 것이다.

이는 나의 股肱같은 사람이니 위엄과 명망이 없으면 누가 진정시킬 것이며, 肺腑같은 사람에게 맡겼으니 저 가려 뽑은 것이 어찌 공연히 한 일이겠는가. 어찌 散職에 두고 閑職에 두도록 해서야 되겠는가. 바깥일을 보고 안 일도 똑같이 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淸慎하고 恬簡한 점은 집안을 잘 꾸리는 고아한 풍모에서 이미 드러나고, 보호하고 회유하는 점은 울타리를 만드는 훌륭한 공적에서 더욱 부지런하였다.


아! 사시에 芬苾하는 예를 받들어 나의 그리워하는 마음을 위로하라, 一府에서 鎖鑰하는 위엄을 굳건히 하는 것은 경의 鈴轄하는 책략의 덕분이다. 그러므로 이에 令示하니, 의당 잘 알 것이라 생각하노라.


도광 칠 년 구 월 십오 일
<순조 27년 1827년 9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