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풍고집 해제본

풍고집

추읍산 2020. 2. 21. 13:02


필자는 성균관 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2019, 12, 31 발행한 해제본인 풍고집을 지난 15일 받은 바 있다. 현재까지 1, 2의 두 책만 나온 상태다. 황산유고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어 장자인 황산(김유근)께서 선별하고 편집하였으나 출간을 이루지 못한 채 1840년에 卒하셨고 셋째 남동생 하옥(金左根, 1797 - 1869)이 1854년 발행하였다고 한다.


틈틈이 읽으면서 향곡 선영과 관련된 부분과 그외라 할지라도 와닿는 글은 옮기고 따라서는 마음을 담고자 한다. 코로나 19가 엄습하고 있다. 따듯한 겨울 속 봄이 다가오는데 어지러운 세상 백척간두가 눈 앞이다. 스스로 빠져들었으니 어찌 가리 리오? 격한 풍랑이 덮쳐오고 있다. 각별한 주의 아래 건강하기를 바란다.


황산유고의 다음 글을 보면서 그때를 생각합니다.



○ 壺舍書懷 示諸客 호사서회 시제객

 

 호사(壺舍)145)에서 감회를 써서 여러 손님에게 보이다

 

 김유근(金逌根 1785 - 840)


維夏來壺舍 유하래호사 여름에 호사(壺舍)에 와서

留連卄日餘 유연입일여 이십 여 일 머물렀네

堂宇尙無改 당우상무개 집들은 여전히 변한 게 없고

花竹自翳餘 화죽자예여 꽃들과 대나무는 절로 무성하네

壘石防岸頽 루석방안퇴 돌 쌓아 언덕이 무너지는 것 막고

引溜決泉疏 인류결천소 물길 끌어 샘이 통하도록 터놓았지

 

老樹自亭노수자정정 세월을 버틴 나무 절로 우뚝하여

嘉蔭覆堦除 가음부계제 멋진 그늘 뜨락에 드리우네

竹椽移寺谷 죽연이사곡 대나무 서까래 절 골짝으로 옮기니

臨池非羡魚 임지비선어 연못에 다가선 건 물고기 부러워서 아니네

小樓眞物表 소루진물표 작은 누각은 참으로 세상 밖에 있는 듯

寧須屋渠渠 령수옥거거 굳이 집이 클 필요 있나

 

珍重乙亥字 진중을해자 을해(乙亥)라고 씌여진 글자146) 소중하니

煌煌壁面於 황황벽면어 바위에 새겨져 찬란히 빛나네

開軒豁四望 개헌활사망 창문을 열어 젖혀 사방을 바라보니

山雲日吐噓 산운일토허 산 구름 날마다 피어오르네

 一邱與一壑 일구여일학 구릉 하나 골짝 하나

經紀勞拮拒 경기노길거 경영하느라 고생도 많았지

 

憶昔侍丈屨 억석시장구 생각하니 예전에 아버지 모신 것은

阿仲汝及子 아중여급자 둘째인 너와 나구나

履舃錯庭廡 이석착정무 신발은 뜨락에 흩어져 있고

車馬充里閭 차마충리여 마수래가 마을을 가득 메웠는데

陰晴晝夜也 음청주야야 궂은 날씨나 갠 날이나, 낮이나 밤이나

春冬秋夏歟 춘동추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 항상 그랬지

 

山顚及水涯 산전급수애 산꼭대기와 물가를

往來無日虛 왕래무일허 하루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飮食供歡樂 음식공환락 음식으로 즐거움 돋우고

文章燦瓊琚 문장찬경거 문장으로 아름다운 글 빛냈지

一往三十年 일왕삼십년 지나간 삼십년

如是送居諸 여시송거제 이렇게 세월을 보냈는데

 

物理有興替 물리유흥체 세상 이치는 흥하면 망하는 법

風樹慟新茹 풍수통신여 어버이 잃은 슬픔 새록새록 사무치네

 痛哭壬辰事 통곡임진사 임진년의 일147)을 통곡하니

悲懷向誰攄 비회향수터 슬픈 이 마음 누구에게 터놓을까

丁寧後死責 정녕후사책 나의 책임이 절실하여

是日返林盧 시일반림로 이제 시골집으로 돌아오니

 

步步念陣迹 보보념진적 거름마다 옛 자취 떠오르고

歷歷似當初 력력사당초 하나하나 처음과 같네

却疑化柱鶴 각의화주학 기둥 위의 학으로 변하셨나148) 했는데

復如罷蘧蘧 복여파거거 다시 보고 꿈깬 듯 놀라네

 凄凉二三客 처량이삼객 처량하구나 손님 두세 명

相携而曳裾 상휴이예거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란히 들어와

 

銜哀入舊堂 함애입구당 슬픔에 잠겨 예전 사시던 마루에 올라

殷勤校遺書 은근교유서 정성스레 남기신 글을 정리하네

浩汗難逢原 호간난봉원 방대하여 근원 찾기 어렵고

文詞富五車 문사부오차 쓰신 글은 다섯 수레 넘었는데

收拾昔不勤 수습석불근 예전에 게으름 피워 수습하지 않아

遺失十一居 유실십일거 거의 잃고 열에 하나 남았네

 

況復編摩際 황복편마제 게다가 편집할 때에

才識愧空疎 재식괴공소 보잘 것 없는 내 능력 부끄러우니

勉旃諸君子 면전제군자 힘쓰게, 여러 군자들이여

臨事愼終譽 임사신종예 일 할 때는 삼가 끝까지 명예를 지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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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호사(壺舍) : 1815년(순조 15) 김조순이 현 종로구 삼청동에 지은 집 옥호정(玉壺亭)이다.


146) 을해(乙亥)라고 씌여진 글자 : 작자의 아버지 김조순이 현 종로구 삼청동에 옥호정(玉壺亭)이라는 집을 지었는데, 그 근처에 을해벽(乙亥壁)이라 각자(刻字)된 바위가 있다 한다.


147) 임진년의 일 : 작자의 아버지 김조순이 죽은 1832년(순조 32)이다.


148) 기둥...변하셨나 : 한나라 정령위(丁令威)가 죽은 뒤에 학으로 변해 고향인 요동에 돌아와 성문의 화표주(華表柱)에 내려앉았는데, 어떤 소년이 활을 쏘려고 하자, 공중을 배회하며 "집 떠난 지 천년 만에 돌아왔는데 성곽은 의구하나 사람은 다르구나." 하고 떠나갔다 한다. <도잠(陶潛) 『수신후기(搜神後記)』> 학이 된다는 것은 신선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학으로 변해 오신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는 것이다.


         



閱先稿 열선고


선친의 원고를 살펴보다


김유근(金逌根 1785~1840)


玉瓚黃流爛有光 옥찬황류란유광 옥찬(玉瓚)의 황류144) 찬란하게 빛나고

積中勳業是文章 적중훈업시문장 내면의 쌓은 공업 바로 문장이라네

昭回歷代淵源重 소회역대연원중 역대를 밝게 살폈으니 연원이 깊고

賁飾熙朝黼黻煌 분식희보불조황 훌륭한 시대 꾸몄으니 나라 빛냄 찬란하네

昔日朱門來舊客 석일주문래구객 옛날 흥성했던 시절 찾아오던 옛 손님들

長年綠野掩虛堂 장년록야엄허당 나이 들자 시골에서 빈 집만 닫혀 있네

編摩自盡生三義 편마자진생삼의 유고(遺稿)를 다 편집하자 군사부(君師父) 의리 알겠으니

纏慟窮天俾可忘 전통궁천비가망 하늘에 사무치는 애통함 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