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문화와 북학파의 산실, 석실서원(아래 클릭)
석실서원(石室書院)은 1656년 선원 김상용과 청음 김상헌의 도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다. 처음 청음(김상헌)의 정침(正寢 와부읍 덕소리 312)에서 출발하였다고 추정하는데 얼마 후 십 여리 떨어진 미호변으로 옮겼고 이어 1663년(현종 4) 석실사(石室祠)라는 편액을 하사받고 사액(賜額)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그 정신은 祖孫(김창협과 김원행)을 통해 나타났는데 조선 후기 교육사업의 요람이었다. 1697년엔 김수항, 민정중, 이단상이 배향되었고 이후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김원행, 김이안, 김조순이 추가로 배향되었습니다.
농암 할아버지[農巖 金昌協 1651년(효종 2) - 1708년(숙종 34) . 시호 文簡] 1)에 이어 석실서원을 이끄신 미호(渼湖 金元行 1702 - 1772 시호 文敬 ) 할아버지를 생각합니다. 渼湖라는 같은 이름의 號와 湖水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어느 해 봄, 여주의 대신면 초현리 선영을 다녀오시고자 서원 앞 미호(渼湖 > 남양주시 수석동, 덕소에서 건너 미사리 사이를 흐르는 한강)에서 배를 타시고 여행하시면서 시 한 수를 남기셨습니다.
이때에는 동생(金達行 1706 - 1738 . 자 脩甫)의 묘소(1747년 미호 인도하심따라 추읍산 아래 향리로 이묘)도 살폈을 것입니다. 오르내리셨던 출발점 渼湖라고 부르는 한강을 바라보면서 이 시를 옮깁니다.
自渼湖發船 向驪州(물길 여행 미호에서 여주까지)
김원행
朝發石室祠 아침에 석실사(石室祠)를 출발하여
登舟自玆始 미호에서 배에 올랐네
江山旣淸曠 강산은 맑고 시원하며
雲日况晴美 구름 낀 날씨지만 청명하고 아름다워라
桃花依絶岸 복숭아꽃은 가파른 언덕에 있고
老屋多臨水 오래된 집들은 물가에 닿았네
中流散雲帆 강물 속 안개를 헤치며 저어가자
風濤浩未已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 그치지 않네
三峰出天畔 산봉우리는 하늘로 솟았고
秀色每相値 빼어난 경치를 매번 만나네
持杯屢相屬 술잔 잡고 서로 몇 차례씩 권하자
歌詠亦互起 노랫소리가 함께 일어나네
樂哉滄洲趣 즐겁구나 강호의 정취여
吾道信在此 나의 길은 참으로 여기에 있네
『渼湖集』권1 詩, 「自渼湖發船 向驪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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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원행은 김제겸[1680년(숙종 6) - 1722년(경종 2) 자 必亨, 호 竹醉, 시호 忠愍]둘 째 아들이었으나 중부(仲父)이신 농암(김창협)의 손자로 입후하였습니다. 따라서 김달행(金達行 1906 - 1738)과는 생가로 친형제입니다. 영조대왕의 출사 종용을 사양하시고 평생 교육사업을 통하어 길러낸 수많은 인재는 북학파의 선구자가 되어 조선 후기를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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