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진경문화와 북학파

석실서원 백두대간을 노짓다

추읍산 2021. 3. 28. 21:35

 

진경문화와 북학파의 산실, 석실서원(아래 클릭)

 

'조선의 화성' 겸재, 중국풍 벗어나 조선의 실제 모습 그리다

<18>겸재 정선 진경문화의 요람 석실서원 · 황호택(서울시립대) 이광표(서원대) 교수 공동집필선원 김상용(仙源 金尙容․1561~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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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제정선이 그린 석실서원도로 숲(좌측상)에 싸였다.

석실서원(石室書院)은 1656년 선원 김상용과 청음 김상헌의 도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다. 처음 청음(김상헌)의 정침(正寢 와부읍 덕소리 312)에서 출발하였다고 추정하는데 얼마 후 십 여리 떨어진 미호변으로 옮겼고 이어 1663년(현종 4) 석실사(石室祠)라는 편액을 하사받고 사액(賜額)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그 정신은 祖孫(김창협과 김원행)을 통해 나타났는데 조선 후기 교육사업의 요람이었다. 1697년엔 김수항, 민정중, 이단상이 배향되었고 이후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김원행, 김이안, 김조순이 추가로 배향되었습니다. 

 

남양주시 수석동 석실서원 동산에서 바라본 미호(渼湖)

농암 할아버지[農巖 金昌協 1651년(효종 2) - 1708년(숙종 34) . 시호 文簡] 1)에 이어 석실서원을 이끄신 미호(渼湖 金元行 1702 - 1772 시호 文敬 ) 할아버지를 생각합니다. 渼湖라는 같은 이름의 號와 湖水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어느 해 봄, 여주의 대신면 초현리 선영을 다녀오시고자 서원 앞 미호(渼湖 > 남양주시 수석동, 덕소에서 건너 미사리 사이를 흐르는 한강)에서 배를 타시고 여행하시면서 시 한 수를 남기셨습니다.

 

이때에는 동생(金達行 1706 - 1738 . 자 脩甫)의 묘소(1747년 미호 인도하심따라 추읍산 아래 향리로 이묘)도 살폈을 것입니다. 오르내리셨던 출발점 渼湖라고 부르는 한강을 바라보면서 이 시를 옮깁니다. 

 

自渼湖發船 向驪州(물길 여행 미호에서 여주까지)

 

김원행

 

朝發石室祠   아침에 석실사(石室祠)를 출발하여

登舟自玆始   미호에서 배에 올랐네 

江山旣淸曠   강산은 맑고 시원하며 

雲日况晴美   구름 낀 날씨지만 청명하고 아름다워라

桃花依絶岸   복숭아꽃은 가파른 언덕에 있고

老屋多臨水   오래된 집들은 물가에 닿았네

中流散雲帆   강물 속 안개를 헤치며 저어가자

風濤浩未已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 그치지 않네

三峰出天畔   산봉우리는 하늘로 솟았고

秀色每相値   빼어난 경치를 매번 만나네

持杯屢相屬   술잔 잡고 서로 몇 차례씩 권하자

歌詠亦互起   노랫소리가 함께 일어나네

樂哉滄洲趣   즐겁구나 강호의 정취여

吾道信在此   나의 길은 참으로 여기에 있네

 

『渼湖集』권1 詩, 「自渼湖發船 向驪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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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원행은 김제겸[1680년(숙종 6) - 1722년(경종 2) ,  , 시호 ]둘 째 아들이었으나 중부(仲父)이신 농암(김창협)의 손자로 입후하였습니다. 따라서 김달행(金達行 1906 - 1738)과는 생가로 친형제입니다. 영조대왕의 출사 종용을 사양하시고 평생 교육사업을 통하어 길러낸 수많은 인재는 북학파의 선구자가 되어 조선 후기를 이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