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선현들의 발자취 38

나이를 초월한 사랑

魂逐行人去 나의 혼은 그대를 쫒아가고 身空獨依門 빈 몸만 문에 기대어 섰오 - 신임 평안감사. 驢遲疑我重 나귀걸음 느려 내 몸이 무거운가 했더니 添載一人魂 남의 혼 하나를 함께 싣고 있었구려 - 김부용(시명 운초). 김부용이 평양에서 나귀를 타고 그리운 임(김이양) 계신 서울로 향할때 모습이란다. 운초는 예술과 시문에 빛을 발휘해 성도의 설교서(薛校書)란 칭호를 받는다. 금수강산을 유람한 후 문을 굳게 닫고 여생을 보내려 하였다. 하늘의 가리킴인가? 그때 김이양(金履陽 1755∼1845 호가 淵泉)은 은퇴 후 봉조하(奉朝賀) 때로 추리하는데 유람차 평양에 들린 일이 있었다(참고 : 김이양은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한 적이 없다. 그분은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한 분이시다.). 이때가 김이양(金履陽 1755∼18..

할머니를 키우신 이정숙 여사

생몰년 : 1858-1935 시대 : 조선, 항일기 분야 : 교육/사상 > 교육자 > 여류 교육가 이정숙(李貞淑)에 대하여 이정숙(李貞淑) 1858(철종 9)∼1935. 여류교육가. 본관은 전주(全州). 경기도 양주출생. 해석(海石)의 둘째딸이다. 16세 때 신정왕후(神貞王后:趙大妃)의 조카인 조영하(趙寧夏)와 혼인하였다. 조영하는 1863년 과거에 급제한 뒤 호조판서·훈련대장·병조판서·도통사 등을 지내고 예조판서로 있던 중, 1884년 갑신정변 때 피살되었다. 1875년에는 정부인(貞夫人)에서 정2품 이상의 관직부인에게 주어지는 정경부인(貞敬夫人)의 호칭을 받았다. 1906년 1월 엄황귀비(嚴皇貴妃)가 한일부인회를 조직하여 총재를 맡았을 때 회장에 취임하였다. 같은해 6월 엄황귀비의 후원을 받아 종로구..

[스크랩] 순조 대왕과 명온 공주 사이의 언간 - 언간(순조.명온 공주)

순조 대왕과 명온 공주 사이의 언간 # 본문 읽기 * 명온 공주가 순조 대왕께 올린 언간 낫것 잡수시오고 안녕이 디내오시압나니잇가. 이 글은 쇼인이 지어사오니 갑하오시고 엇더하온가 보아 주오심 바라압나이다. 구츄상야당(九秋霜夜長) 구츄 서리 밤이 기러시니 독대등화경(獨對燈火輕) 홀로 등잔..

[스크랩] 순조의 삼녀 덕온공주 8세때 친필

서울 정도 600년 기념으로 열린 '서울 정도 600년 기념으로 열린 '한양서울 정도 600년 기념으로 열린 '한양여인의 향취전' 자료집에서..... ::8세 공주(公主)의 궁체솜씨:: 봉건시절 상류사회 특히 왕실의 궁체(宮體)교육이 얼마나 매서웠던가는 덕온공주의 어릴 때 필적을 보면 알 수 있다. 8세때의 필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