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졸기(卒記) 26

강도 함락 시, 전 의정부 우의정 김상용과 전 우승지 홍명형 등의 졸기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1월 22일 임술 9번째기사 1637년 명 숭정(崇禎) 10년 강도 함락 시, 전 의정부 우의정 김상용과 전 우승지 홍명형 등의 졸기 전 의정부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이 죽었다. 난리 초기에 김상용이 상의 분부에 따라 먼저 강도(江都)에 들어갔다가 적의 형세가 이미 급박해지자 분사(分司)에 들어가 자결하려고 하였다. 인하여 성의 남문루(南門樓)에 올라가 앞에 화약(火藥)을 장치한 뒤 좌우를 물러가게 하고 불 속에 뛰어들어 타죽었는데, 그의 손자 한 명과 노복 한 명이 따라 죽었다. 김상용의 자는 경택(景擇)이고 호는 선원(仙源)으로 김상헌(金尙憲)의 형이다. 사람됨이 중후하고 근신했으며 선묘(宣廟)를 섬겨 청직(淸職)과 화직(華職)을 두루 역임하였는데, 해야 할 일을 만나면..

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부 김상헌의 졸기

효종실록 8권, 효종 3년 6월 25일 을축 1번째기사 1652년 청 순치(順治) 9년 직계 대광 보국 숭록 대부 의정부 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부 김상헌(金尙憲)이 양주(楊州)의 석실(石室) 별장에서 죽었다. 죽음에 임해서 상소하기를, "신은 본래 용렬한 자질로 여러 조정에서 다행히도 은혜를 입어 지위가 숭반(崇班)에 이르렀는데도 작은 공효도 이루지 못하고 한갓 죄만 쌓아 왔습니다. 병자년 정축년 난리 이후로는 벼슬에 뜻을 끊었는데 중간에 다시 화를 당하여 온갖 어려움을 갖추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도 선왕(先王)께서 초야에 있던 신을 부르시어 태사(台司)에다 두시기에, 은명에 감격하여 힘든 몸을 이끌고 한번 나아갔으나, 흔단만 쌓은 여생이 힘을 다할 희망이 없어, 조상의 묘소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