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직계조상님

(2) 1차 안동김씨 세도정치 (1804~ 1840, 순조 4년~ 헌종 6년)

추읍산 2009. 6. 11. 23:46

서기 1800년 정조대왕(正祖大王 1752~ 1800)께서 붕어(崩御)하시고 어린 순조(純祖 1790~ 1834)가 11세의 나이로 즉위합니다. 이에 영조(英祖 1694~ 1776)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 1805)는 대비(大妃)의 자격으로 수렴청정(垂簾聽政)에 나서게 됩니다. 김조순은 그 딸 순원왕후가 정조대왕 생전에 사실상 순조의비로 내정되어 있었고 정조대왕 유언에 의해 순조의 보필을 부탁받았습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1802년 10월 김조순의 딸은 순조의 비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 1857)로 책봉됩니다. 1804년 1월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거두고 1805년 정월 별세하게 됨으로써 정권은 정조의 유언에 의해 국구(國舅)인 영안부원군 김조순[永安府院君 金祖淳 1765~ 1832 |호: 풍고(楓皐)|시호: 충문(忠文)]에게로 이동합니다. 김조순은 그 딸이 순원왕후로 간택되는 데는 추사 김정희의 생부(生父)인 김노경(金魯敬 1766~ 1840)의 도움, 그리고 정권을 잡는 데는 순조의 외조부 박준원(朴準源 1739~ 1807)의 도움이 컸다고 합니다. 김조순은 위 박준원, 풍양조씨의 조득영(趙得永 1762~ 1824) 가문의 협조 속에서 정국을 열어나갔습니다. 1)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1>, 동방미디어, 2001, pp 89~103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이때부터 세칭 1차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시작됩니다. 이를 가리켜서 많은 사람이 세도정치를 한 안동김씨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편승해서 근거도 없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때 안동김씨 인물들이 대거 조정에 들어와 권력의 핵심을 장악했다. 견제세력이 없는 정권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이로 말미암은 매관매직, 삼정의 문란과 국정의 혼란을 가져왔다.

 

 

과연 그러한지 알아보겠습니다. 질타대상 인물들은 김조순과 그분이 순조대왕을 보필하는 28년 동안의 정경(正 卿: 정일품, 종일품, 정이품, 표  청색 굵은 글씨 참조)을 하신 안동김씨 인물들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에 해당하는 저희 가문 모든 분을 질타 여부에 관계없이 한 분도 빠트리지 않고 출사표(出仕表)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김조순은 별도로 소개합니다.2) 김시근은 1814년, 김학순은 1832년에 각각 정경이 되었습니다. 질타를 당하지 않았지만, 출사표에 포함함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특히, 김명순(김조순의 4촌)은 실권(實權)이 미미한 아경(亞卿: 참판급)이었고 어떤 부정적인 흔적이 없는데도 질타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