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년 헌종대왕(憲宗大王 1827~ 1849)이 후사 없이 붕어(崩御)하십니다. 이에 순원왕후는 강화도(江華島)에 은거 농사를 짓고 있던 이원범(李元範)을 익종(翼宗, 孝明世子 1809~ 1830, 순조의 아들)의 대를 잇는다는 명분으로 헌종에 이어 25대 철종대왕(哲宗大王1831~ 1863)으로 즉위하게 합니다. 김문근(金汶根 1801~ 1863)의 딸을 철종의 비 철인왕후(哲仁王后 1837~ 1878)로 삼음으로써 2차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안동김씨에 의한 독주는 타성(他姓)을 허락하지 않았고 권력의 모든 요직은 안동김씨 척족세력과 그 추종자들에 의해 독식 되었으며 철종은 허수아비 왕으로 전락 되었습니다. 당시 정국은 김문근, 김좌근(金左根 1797~ 1869)이 주도하였는데 그때부터 세도정치로 오는 모든 폐단이 나타나게 됩니다. 8) 전동(김문근 거처지)과 교동(김좌근 거처지) 시절이니 나합 이야기 등은 부끄러운 저희 가문의 자화상으로 되돌아옵니다. 조선조 말 지사(志士) 황현(黃玹 1855~ 1910)의 매천야록(梅泉野錄)의 기록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장김(장동김씨의 약칭, 곧 안동김씨)이 나라 권세를 잡은 지 오래되자 세인들은 장김만 알 뿐 나라가 있는 것은 알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장김이야말로 나라의 기둥이요 주춧돌이다.” 하지만 어찌 그렇겠는가! 또한, 그는 장김의 선대인 선원 김상용, 청음 김상헌, 문곡 김수항, 몽와 김창집 같은 분들은 모두 덕망과 공훈으로 나라 안에서 이름이 높았다. 김조순도 글을 잘 짓고 일을 잘 처리하여 후덕하다고 칭찬을 들었지만, 그 자손들이 탐욕스럽고 완고하며 교만하고 사치하여 참으로 외척이 나라를 망치는 화의 시작이 되었다.
이 부끄러운 가문의 역사에 대하여 후손으로서 머리 숙여 깊은 사죄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부터 정직한 삶 속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또 그렇게 다짐함으로써 국가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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